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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김정임-
두 팔은 대지를 향했고 낮게 뜬 구름 둘러앉아 그림자 드리우네
빛이 떠나버린 눈은 떡갈나무 서성이는 여름 강을 기억하네
날이 어두워지자 돌계단에 서서 습관처럼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듣네
오목한 나뭇잎이 대지의 공복을 채우기 위해 바람에 흩어지네
잠깐 사랑한 것 같은데 얼굴 없는 사랑니만 남았네
반짝이며 생의 어두컴컴한 통로를 외등처럼 밝히네
태아를 품은 골반 그 어디쯤 흐느껴 울던 심장의 윤곽에 어스름이 깔리네
말없이 흘러내리는 이 느낌이 무얼까 싶을 때는
수만 년을 흘러갔다 흘러온 루시의 자기장이 너의 가슴에 간절히 닿은 순간이네
여름 내내 강물은 한곳으로만 흐르네
너의 그리운 세월 속으로 네 눈물 타고 루시가 돌아오네
*루시: 350만 년 전에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화석.
―계간『문학과 창작』(201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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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멀리 떨어진
워즈워드
인적 멀리 떨어진 더브의 샘물 가에
아름다운 루시는 살고 있었다.
칭찬해 주는 사람 아무도 없었고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는 아가씨였다.
이끼 낀 바위 틈에 반쯤은 숨은
한 떨기 소박한 오랑캐꽃이랄까!
아니면, 어두운 밤 서녘 하늘에
다만 홀로 반짝이는 별이라 할까.
아는 이 전혀 없이 혼자 살다가
아는 이 이 전혀 없이 홀로 죽었다.
이제는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그녀
아, 나만은 슬픔 안고 그녀를 안다!
―김희보 엮음『世界의 명시』(종로서적,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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