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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 샤갈의 花요일 밤 / 송기영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1. 1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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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의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6』(국립공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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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갈의 花요일 밤

 

  송기영

 

 

   花요일 밤에 오세요. 맨발로, 펑펑. 화장이 번진 스텝도 좋아요. 하나, 둘 지붕을 걷고 턴테이블에 전원을 넣으면, 아주 오래된 왈츠에 맞춰 지구가 돌아요. 둥글둥글 왼쪽으로 도는 집시들. 죽은 엄마와 떠난 애인이, 실족사한 새들과 목 부러진 꽃들이 서로의 발을 밟으며 돌아요. 펑펑 오세요. 눈을 감으면 왼쪽으로 빙글빙글 감전되는 花요일 밤, 오세요. 왈츠를 추며 얼굴을 묻으러. 꽃삽은 필요 없고요. 전등 위에 손을, 손 위에 검은 구름을 깍지 끼고 함께 돌아요. 사뿐사뿐, 목을 매도 모른 척해 줄게요. 당신 걷던 자리마다 b플랫 단조. 베란다 창문을 열고, 하나, 둘 전원을 넣으면

 
   왈츠에 맞춰

   우리였던 얼굴들이 허공을 돌아요

   맨발로, 핑

   그르르

 

  

―시집『.zip』(민음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