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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고양이가 울 때
김승강
저 고양이는 내가 혼자라는 걸 알고 있는 거야
아침에 골목길을 막 돌아서는데
저 놈이 힐끔 나를 쳐다봤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어
고양이가 운다
아기 울음소리로
섧게 섧게
저 울음은 나 들으라는 소리가 분명하다
고양이 속에는 아기가 들어 있어서
태어나지 못한 내 아기가 들어 있어서
고양이 속에서 운다
태어나지 못한 내 아기가
나 들으라고 울고 있다
섧게 섧게
마을이 갑자기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다
모두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무심한 듯 집안에서 가만히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건넛집 남자가 딱 한번 고함을 꽥 지른 적이 있을 뿐이다
고양이가 섧게 우는 날은
내 아이가 우는 날
사람들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다는 걸 나는 안다
잠들었던 자들은 잠에서 깨어나서
잠들지 않았던 자들은 아기가 저토록 섧게 울 수 있느냐 듯
어둠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저 울음소리는 나 들으라는 소리
―웹진『시인광장』(201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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