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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뼈 - 천수호/윤의섭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8. 3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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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뼈

 

천수호

 

 

시속 백 킬로미터의 자동차

창밖으로 손 내밀면

병아리 한 마리를 물커덩 움켜쥐었을 때 그 느낌

바람의 살점이 오동통 손바닥 안에 만져진다

오물락 조물락 만지작거리면

바람의 뼈가 오드득 빠드득

흰 눈 뭉치는 소리를 낸다

저렇듯 살을 붙여가며

풀이며 꽃이며 나무를 만들어갈 때

아득바득 눈뭉치는 소리가 사방천지 숲을 이룬다

바람의 뼈가 걸어 나간 나뭇가지 위에

얼키설키 지어진 까치집 하나

뼈 속에 살을 키우는 저 집 안에서 들려오는

눈보다 더 단단히 뭉쳐지는 그 무엇의 소리

 

 

 

―월간『현대문학』(200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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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뼈

 

윤의섭

 

 

바람결 한가운데서 적요의 염기서열은 재배치된다

 

어떤 뼈가 박혀 있길래

저리 미친 피리인가

 

들꽃의 음은 천 갈래로 비산한다

돌의 비명은 꼬리뼈쯤에서 새어 나온다

현수막을 찢으면서는 처음 듣는 母語를 내뱉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음역은 그러니까 눈에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후에는 공중에 뼈를 묻을지라도

후미진 골목에 입을 댄 채 쓰러지더라도

 

저 각골의 역사에 인간의 사랑이 속해 있다

그러니까 모든 뼈마디가 부서지더라도 가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열은 생각처럼 슬픈 일은 아니다

 

하루 종일 풍경은 바람의 뼈를 분다

來世에는 언젠가 잠잠해지겠지만

한없이 스산하여 망연하여 그리움이라든지 애달픔이라든지

그런 음계에 이르면 오히려 내 뼈가 깎이고 말겠지만

 

한 사람의 귓불을 스쳐오는 소리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음성을 전해주는 바람 소리

그대와 나 사이에 인간의 말을 웅얼거리며 가로놓인 뼈의 소리

 

저것은 가장 아픈 악기다

온 몸에 구멍 아닌 구멍이 뚫린 채

떠나가거나 속이 텅 비어야 가득해지는

 

 

 

ㅡ계간『문학과 의식』(2012.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