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산
고영조
아직도 이 땅에 이름없는 산이 있다 지도에도 없다 이름이 없으니 얼마나 좋으랴 내 고향귀현리에도 이름 없는 봉오리가 있다 마을 뒤에 있다고 뒷동산이고 동구 앞에 있다고 앞산이다 그것도 이름이다 이름 없이 그냥 산이고 나무고 사람이면 어떠리 이름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한둘 아니다 하나도 모자라 호도 있고 자도 있고 아명도 있고 필명도 있다 이름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은 비석에 이름과 호와 자를 음각으로 깊이깊이 파서 남긴다 이름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다 나는 이 이름 없는 산이 더 좋다 산이 이름 없으니 산이다 그래서 이름 없는 사람들만이 산에 즐겨온다 이름이 없으면 그것만으로 기쁘다 "우리가 어떻게 하늘과 어머니인 대지와 공기와 시냇물을 팔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가장감명 받은 이 말도 실은 이름 없는 인디언 추장이 한 말이다 이름이 없으니 땅과 하늘을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건청 외 지음, 한국시인협회 엮음『장수하늘소는 그 산에 산다』(굿글로벌, 2010)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산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 산 / 곽효환 (0) | 2014.09.03 |
---|---|
산가시내 / 한하운 (0) | 2014.09.03 |
산 / 이자규 (0) | 2014.09.03 |
산 아래 식사 / 이홍섭 (0) | 2014.09.03 |
산을 보며 / 이해인 (0) | 2014.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