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빈 산 / 곽효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9. 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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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산

 

곽효환

 

 

여름에 지친 초록들이

서늘한 바람을 부르는

텅 빈 산

 

뱀 한 마리

맑은 계곡물을 거슬러 오른다

삼각의 머리를 반쯤 물 밖에 내어놓고

온몸을 좌우로 구부려 흔들며

역행하는 힘찬 유선의 유영

어디로 가시는가

 

물안개 그득한 호수

반쯤 몸을 담근 왕버드나무가

듬성듬성 거리를 두고 이룬

나무들의 섬, 섬들

누구를 기다리는가

 

빈 하늘에 뭉게구름

잔영이 되어 고인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숨은 그리움

비어 있는가 혹은 늦지 않았는가

 

바위채송화 솔나리 굴참나무 굴피나무 망개나무

아직 아름다운데

 

 

 

―시집 『지도에 없는 집』 (문학과지성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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