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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이재무
어릴 적, 아부지의 회초리가 되어
공부나 심부름에 게으른 날엔
종아리 파랗게 아프게 하고
식전부터 일 나가신 엄니 아부지
기다리다 지치는 날엔
동무보다 재미있는 장난감되어
하루해전 무료 달래어주던
나의 선생 나의 누이인 나무
지금도, 안부 챙기러 고향 갈 적에
반쯤 허리 숙인 채
죽은 엄니 살았을 적 손길로
등 두드리는
이 세상 가장 인자한 어른
기쁠 때 쏟은 한 말의 웃음
설을 때 쏟은 한 가마 눈물
뿌리로 가지로 쑥쑥 자라는
우리 동네 제일로 오래된 나무
(『섣달그믐』.청사. 1989)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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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가 쓰러지셨다
이재무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를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ㅡ시집『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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