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무의 기억
김명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먼 나무
먼나무라는 이름의 나무가 있다
먼 나무의 일렁이는 나뭇잎 속으로
오방색으로 흩어지는 저녁의 잔광
먼나무를 오래 그리워하면
두 눈이 멀게 될 것만 같아
나는 먼 나무 곁으로 가지 못했다
살아서는 아직 한 번도
그 꽃을 보지 못한
먼나무의 붉은 열매와도 같은
슬픔의 적막한 좁은 미간 위에서
자꾸만 푸드덕거리는 긴 긴 여름 일몰 시각
먼나무 속으로 들어가서는
다시는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새들이 있다
―계간『詩로 여는 세상』 (2014.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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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무
김명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먼 나무
먼나무라는 이름의 나무가 있다
먼 나무의 나뭇잎 속으로
오방색으로 일렁이고
흩어지는 저녁 잔광
먼나무 속으로 들어가서는
다시는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새들처럼
먼 나무를 오래 그리워하면
눈이 먼 나무가 될 것 같아
나는 당신이라는 먼나무 곁으로 가지 못했다
번석류의 붉은 열매와도 같이
적막한 생
살아서는 아직 한 번도
그 꽃을 보지 못한
당신이라는 새의 옛날 옛적
―격월간『시사사』 2(014.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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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무
박설희
바로 코 앞에 있는데 먼나무
뭔 나무야 물으면 먼나무
쓰다듬어 봐도 먼나무
끼리끼리 연리지를 이루면 더 먼나무
먼나무가 있는 뜰은 먼뜰
그 뜰을 흐르는 먼내
울울창창
무리지어서 먼나무
창에 흐르는 빗물을 따라
내 속을 흘러만 가는
끝끝내
먼나무
―계간『시와정신』 (201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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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무
김용언
이름이 슬픈 나무다
곁에 있어도 먼나무다
멀리 있다는 건 외로움이 아닌가
부처도 인간들 사이에서 득불을 했는데 멀리 있으면
누구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 주며, 누구의 아픔을 들어줄 수 있으랴
자줏빛 꽃이나 멀쑥하게 피우다가 밤이면 별과 달을 바라보며 바람으로 우는 먼나무,
가련하여 정원으로 불렀더니 곁에 있어도 먼 나무니 멀리 간다며
답레로 꽃 몇 송이 보여 주고 떨어진다
자줏빛 떨어진 가슴
나 모르는 사이에 자줏빛이 얼룩져있다
―시집『쭉정이의 행복』(신아출판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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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무에게로
전동균
그 곳으로 가시지요 열매를 매단 채
새 이파리 피운
신성한 나무에게로
좀 멀긴 합니다 신발을 벗고 몰려오는 구름들과
물결치는 돌들의 골짜기를 지나야 하죠
좌익도 우익도 없이 내려앉은 무덤들
시장 난전의 손바닥 같은
바람의 비문(碑文)을 읽어야 해요
―일생토록 쌀 닷 말 지고 가는 사람, 우리는
아침에 얼어붙은 강을 건넜으나
밤에도 강가에서 노숙하는 사람
울며 웃는 사람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요 그 곳엔
다람쥐가 뱀을 잡아먹고 사람이 사람을 불태울지 몰라요
하늘로 하늘로 이파리들 펄럭일 때
누군가는 하염없이 오체투지
큰 절 올리고 있을지도
쉿!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모르는 척 기다려야 해요
그이들도 가슴에 통곡을 넣고 왔을 테니까
살얼음을 밟듯 지옥의
별자리를 건너왔을 테니까
아흔 아홉 설산 너머 무지개공원의 늘 푸른 나무
공원보신탕 입구 개사슬 묶인
으렁 으렁 먼나무*
* 감탕나무과의 늘푸른 키 큰 나무.
-계간『시와 사상』(201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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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먼나무
허소미
사랑이
꼭 백설 위에 듣는 핏빛이어야 하는가
찬물 같은 날에도
오종종 빨간 열매
나무 먼나무
눈 속 가득 차오르는
따스한 빛살
가까운 듯 먼 듯 살아온 부부
오누이처럼 닮은 세월로 바라보며
눈치로 대강 짐작하는
믿음의 뿌리가 정이라며
추운 뱃속에
뜨건 국밥 한 그릇으로 푸른 것 같은 것이라고
한 마디
남겨진 그 한마디 받아안아
사랑은 더욱 반짝이는가
가까울수록
먼데 사람 그리워하듯 하라
아우르는 메시지
그 나무 제 이름자 속에
딴청처럼 갈무리하고 있다
―시집『 먼 먼나무 』(시학,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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