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들
이재무
삼류는 자신이 삼류인 줄 모른다
삼류는 간택해준 일류에게, 그것을 영예로 알고
기꺼이 자발적 헌신과 복종을 실천한다
내용 없는 완장을 차고 설치는 삼류는
알고 보면 지독하게 열등의식을 앓아온 자이다
삼류가 가방 끈에 끝없이,
유난 떨며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성희롱인 줄도 모르고
일류가 몸에 대해 던지는 칭찬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우쭐대는 삼류
삼류는 모임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얻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류와 어울려 사진을 박고 일류와 더불어 밥을 먹고
일류와 섞여 농담 주고받으며 스스로 일류가 되어간다고 착각하는 삼류
자신이 소모품인 줄도 모르고 까닭 없이 자만에 빠지는
불쌍한 삼류 사교의 지진아
아 그러나, 껍질 없는 알맹이가 없듯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 없이
어찌 일류의 광휘가 있으랴
노래를 마친 삼류가 무대를 내려서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삼류의 얼굴에 꽃물이 든다
삼류는 남몰래 자신이 여간 대견하고 자랑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사실 열렬한 박수갈채는 노래 솜씨보다 월등한
그녀의 미모에게 보낸 것인데 그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다
삼류는 일류들이 앉아 있는 맨 앞줄을 겸손하게 지나서
이류들이 앉아있는 중간을 우아하게 지나서
삼류들이 뭉쳐 있는 후미에 뽐내듯 어깨 세우고 앉는다
삼류는 생각한다 이렇게 열심히 노래 부르다 보면
언젠가 저 중간을 넘어 저 맨 앞줄에 의젓하게 앉아 잇는 날이 올거야
삼류는 가슴을 내밀어 숨으 크게 마셨다 내 뿜는다
그러나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가
삼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온다
그녀도 세상은 이미 각본대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삼류는 어제 그러하였고 오늘 그러하였듯
내일 또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자리와 역할이 일류를 위한 영원한 들러리요, 삐에로요,
악세사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무슨 회한처럼 문득 깨달을 것이다
삼류는 어제 그러하였고 오늘 그러하였듯
내일 또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자리와 역할이 일류를 위한 영원한 들러리요, 삐에로요,
악세사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무슨 회한처럼 문득 깨달을 것이다
―월간『현대시학』(200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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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가 본 삼류들
―이재무 시인의「삼류들」을 읽고
정겸
녹산문고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신간 시집코너 앞에서,
나는 본다, 이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의 냉기보다 무수히 쏟아지는 역겨운 시집들을,
누구도 읽지 않은 일류의 시집들을.
한때 가이아의 향기가 흘렀던 이 시집의 종이,
폐지도 되기 전에 벌써
썩은 냄새를 풍기며
한물간 채소처럼 버려지고 있다.
아직도 착각에 빠져있는 배우들이
검정천으로 가려진 무대에서
저희들만의 유령 왕국을 만들고
북을 치고 장구도 치며 공연을 하고 있다.
대본에도 없는 왕을 옹립하고
군주가 되어 옥새도 찍히지 않은
교지를 남발하며
누구는 정승이 되어 우쭐거리고
누구는 남원고을 원님이 되어 주색잡기로 하루를 보내고
누구는 고부군수가 되어 수탈을 일삼고 있다.
누구는 관기가 되어 소모품처럼 노리개가 되었고
누구는 미관말직이라도 얻어 보려고 산해진미를 진상하고 있다.
매관이 성행하는 이상한 왕국
백성들이 이반한 유령 왕국
백색의 양귀비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그 향기에 취해 흔들거리는 폐허가 된 왕국
사방을 둘러보아도 관객은 없다
저희들끼리 웃다가 울다가
박수를 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공연을 마친 속물들이 가면을 쓰고
굶주린 승냥이로 변하여 먹잇감을 사냥하고 있다.
하늘을 막 날려던 가냘픈 까투리 한 마리
목덜미를 물려 피를 흘리고 있다.
―월간『현대시학』(200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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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를 폄하한 어느 시인에게
복기완
잘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데
삼류는 자기가 삼류라는 인식을 못한다고
일류 속에 어쩌다 운 좋게 끼어 희희낙락 하지만
피에로를 의식하는 순간의 비애를 느낀다고
충고 하던데
삼류 없는 일류는 존재하지 않는 허무의 계층인 것을
저주스러울 정도의 운명적인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그렇게 가볍게 삼류라는 허울로 폄하해도 되는가?
일류라는 값 비싼 먹물들 모여 학연, 혈연, 지연
다 동원하여 검은 휘장 가리고 갖은 추태 부리며
접근금지 팻말 걸어놓고 배춧잎만 헤아리고 앉아서
저들끼리 나눈 감투 크기대로 차례로 얻는 밥상에
꼬리치며 박수치며, 미로를 즐기는구나.
첨단 광케이블 타고 외치는
수단이 비열하면 목적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진리를 못 찾아 허우적댄다.
초등학교에서 배웠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너무 쉬워서 그대들은 잊었는가?
더러운 치매아닌 치매가 문학세계에 창궐하는구나!
그대들은 언제 한 번 따뜻한 손 내민 적 있더냐?
언제 한 번 잘한다고 추임새 넣어준 적 있더냐?
운명적으로 타고난 끼를 꺾지 못하고
차라리 저주처럼 받아드리고 사랑하는 열정이란다.
글쓰기란 것이
감정 같아서는 필을 꺾어 기름진 너의 배를 향하여
던져 버리겠지만
숙명처럼 타고난 글에 대한 애정이 그대들의 폄하보다
더 많으니 이 또한 서글프면서도 분노 하노라
오물로 채워진 혐오스런 일류보다는 진실로 양식하는
삼류로 남아 자연과 벗 삼고 풍류를 즐기리라
눈물로 잉크삼아 죽도록 사랑하는 시를 쓰며
잘난 그대들의 변방에서 체제를 부정하며 살겠노라
기웃거리지도 않을 것이며 피에로도 되지 않을 것을
세상에 공포 하노라!
[출처] 이재무의 삼류들을 읽으며|작성자 복기완
http://blog.naver.com/kingbkw/120054498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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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이길옥
공사판 흙먼지와
작업장 기름얼룩이 수시로 조우한 바지
질긴 수명을 끼고 다니다 보니
내 나이에도 때가 낀다.
똥비누 미끈한 몸을 빌려
때의 몸통을 기죽인 뒤
두들겨 패고 문지르고 쥐어짜서
오랜 세월을 버티어온 징한 때 뭉치
쏙 빼놓고 보니
이럴 수가
대야에 담긴 물이 먹물이다.
이 더러운 것들을
애지중지 아껴온 못난 놈
세월의 축조만큼
내게 쌓인 때를 빨면
얼마나 시커먼 색을 뱉어낼까.
나는
스스로도 빨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삼류다.
―월간『모던포엠』(2013. 10)
[출처] 시 낭송을 위한 / 이을현의 창가
http://blog.naver.com/somchanel/9018742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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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류가 좋다
김인자
이제 나는 삼류라는 걸 들켜도 좋을 나이가 되었다.
아니 나는 자진해 손들고 나온 삼류다.
젊은 날
일류를 고집해 온 건 오직 삼류가 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더러는 삼류 하면 인생의 변두리만을 떠올리지만 당치 않는 말씀.
일류를 거쳐 삼류에 이른 사람은 뭔가 다르다.
뽕짝이나 신파극이 심금을 울리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너무 편해 오래 입어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낡은 옷 같은 삼류.
누가 삼류를 실패라 하는가.
인생을 경전(經典)에서 배우려 하지 말라.
어느 교과서도 믿지 말라.
실전은 교과서와 무관한 것.
삼류는 교과서가 가르쳐 준 문제와 해답만으로는 어림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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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 시인에게
이화은
영국 윌리엄 왕자의 세기적인 결혼식에 들러리를 섰던 왕세자빈의 여동생「피파미들튼」의 뒤태가 너무 아름답다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고 있다는데
선배시인들의 시상식이다 출판기념회다 꽁지에 불붙은 들짐승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박수 치다 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어떤 시인은 *한 나라에 시인은 세 명이면 족하다고 한다 그 외에는 모두 모국어의 거름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세 명의 시인 외에는 모두 들러리라는 셈인데
들러리가 거름이라면! 모두 다 나무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감나무는 지전 같은 두터운 이파리를 떨어뜨려 스스로 제 거름을 마련할 줄 안다
지금 세계가 들러리를 주목하고 있다
시인이여 들러리 시인들이여 뒤태 고운 시나 쓰며 한 번 잘 썩어 보자 부르튼 모국의 입술을 적셔 줄 세 명의 시인을 위해 꽁지 빠지게 박수 한 번 제대로 쳐보자
*한우진 시인의 시에서
―계간『다층』(201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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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인생
안주철
나는 시집을 살 때
시인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본다.
그것만열심히 읽어서 그런지
시인 이름만 대면 그가 쓴 시는 몰라도
그가 나온 대학은
나와 함께 글쓰는 친구처럼 잘 안다
술을 마실 때만
왜 없는 놈들은 글쓰기도 힘드냐고
눈과 목에 힘을 줘보기도 하고
이제부터 삼류대학 나와서
시 쓰는 놈들의 시집만을
사보자고 비틀거리는 결심도 해보지만
며칠 후 서점에 들러
나와 나의 친구는 사이좋게
삼류대학 나온 놈들의 시집을
한권도 사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동안
삼류라는 말과 시인의 약력에 대해
함구한다.
어느오후에는 술집에서 다시 만나
그런 속된 얘기는 하지 말자고
정신까지 비틀거리며 결심한다.
-시집『다음 생에 할 일들』( 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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