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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모음 시 - 문정희...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1. 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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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문정희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
유산도 고스란히 제 몫으로 차지한
우리 집의 아들들만 오빠가 아니다.


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
이제 모든 남자를 향해
다정히 불러주기로 했다.


오빠라는 말로 한방 먹이면
어느 남자인들 가벼이 무너지지 않으리
꽃이 되지 않으리.


모처럼 물안개 걷혀
길도 하늘도 보이기 시작한
불혹의 기념으로
세상 남자들은
이제 모두 나의 오빠가 되었다.


나를 어지럽히던 그 거칠던 숨소리
으쓱거리며 휘파람을 불러주던 그 헌신을
어찌 오빠라 불러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로 불리워지고 싶어 안달이던
그 마음을
어찌 나물 캐듯 캐내어 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
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
헐떡임이 사라지고


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
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는
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
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다.

 

 

 

―시집『오라 거짓 사랑아』(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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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되고 싶다

 

임보 

 

 

나팔바지에 찢어진 학생모 눌러쓰고
휘파람 불며 하릴없이 골목을 오르내리던
고등학교 2학년쯤의 오빠가 다시 되고 싶다


네거리 빵집에서 곰보빵을 앞에 놓고
끝도 없는 너의 수다를 들으며 들으며
푸른 눈썹 밑 반짝이는 눈동자에 빠지고 싶다


버스를 몇 대 보내고, 다시 기다리는 등굣길
마침내 달려오는 세라복의 하얀 칼라
‘오빠!’ 그 영롱한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토요일 오후 짐자전거의 뒤에 너를 태우고
들판을 거슬러 강둑길을 달리고 싶다, 달리다
융단보다 포근한 클로버 위에 함께 넘어지고 싶다


네가 떠나간 멀고 낯선 서울을 그리며 그리며
긴 편지를 지웠다 다시 쓰노라 밤을 세우던
열일곱의 싱그런 그 오빠가 다시 되고 싶다

 


 
―시집『검은등뻐꾸기의 울음』(시와시학,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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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은 오빠

 

   김언희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 끊어질 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 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 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층층이 찍 소리 없이 섹스들을 해, 찍 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가 됐나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싸게 만들어, 하느님도 오줌을 싸실 걸,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

 

 

 

ㅡ계간『창비』(2012년 겨울호)
(2014년 제6회 이상문학상 수상)

 

계간 『시와세계』가 주관하는 제6회 <이상시문학상> 수상자로 김언희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보고 싶은 오빠」외 4편으로 심사위원(이승훈, 박의상, 송준영)들은 “인간과 삶
의 모순을 언어적 유희와 역설로 표현함으로서 시적 구제(詩的 救濟)를 꾀한 에로와 그로테
스크 미학의 수작”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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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실 오빠


  김재근


 

  사랑하는 오빠, 오늘은 파마하러 왔어요. 큰 물결치는 파마를 해주세요. 머리카락에서 파도가 치면 물고기도 키우려고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파마한 지니, 천일동안 오빠를 보며 알리바바와 41인의 도둑이야기도 해줄게요. 40인이 아니라도 실망 말아요. 알리바바는 알리바이가 완벽하잖아요. 아무튼 그렇잖아요. 이야기가 시시하더라도 ‘열려라 참깨’ 같은 유치한 주문은 하지마세요. 세상에 참깨를 열어서 뭐하겠어요, 그냥 쉬운 나를 열어주세요. 내 안에는 여러 달콤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하나도 같지 않고 결말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들려줄게요. 창밖에 비가 부슬부슬 오고 오빠가 머리를 감겨줄 때 오빠의 굵은 손가락이 내 머릿속 우주를 헤집는 것 같아 온몸이 둥 둥 둥 떠다녔어요. 오빠, 창밖에 세워둔 양탄자 타고 하늘을 날아 봐요. 오빠의 빛나는 다락방에 숨겨둔 야광별을 보며 밤을 건너는 유람선도 만들어요. 쉴 새 없이 물결치는 파마를 타고 별과 장미의 정원을 넘나들며 램프를 돌다 뛰쳐나온 파도소리가 도 미 솔 파랑을 세차게 두드리게. 눈을 감아 봐요, 이제 정말 정말로 마지막 요술램프가 나올 차례에요. 램프는 흔한 램프지만 오빠가 만지면 특별한 기분이 들어요. 머릿결에 부는 파도가 헝클어지지 않게 오빠의 손가락으로 만져줘요. 생일날 오빠가 구운 쿠키처럼 거품이 일고 바다향이 나게. 오빠 염색도 부탁해요. 내 몸을 천천히 열고 꼭지도 빨갛게 발라줘요. 멀리 북극에서도 오빠가 찾을 수 있게. 파도를 덮어쓰고 춤추는 파랑을 오빠라 생각할게. 오빠 사랑하는 오빠 지니,

 

  


 ㅡ반년간『내일을 여는 작가』(2014.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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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라는 이름의 오바

 
  김민정

 

  서울역 계단에서 다다다다 굴렀던 날 일으켜준다더니 그 손으로 자빠뜨리는 오빠를  만났다. 안 그러면 뼈가 상한단다. 이 오빠만 믿어. 코맹맹이 소리로 지나가는 세 번째 앰뷸런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오빠, 자꾸 부르니까 코 막히는 오빠, 오빠는 붕대 대신 두루마리 휴지로 깁스를  해준다고 풀럭거리는데 비가 와 퉁퉁? 불은 휴지들이 고름처럼 내 몸에서 솟아나잖아요. 안 그러면 뼈가 상했을 거야, 이 오빠만 믿어. 코맹맹이 소리로 지나가는 다섯 번째 앰블런스, 달이 뜨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오빠, 자꾸 부르니까 코막히는  오빠, 오빠는 식염수 대신 정액으로 소독해준다고 싸대고 앉았는데 빨아들이지 말아요 그날의 둘째 날이라 창자가 내 피로 흥건하잖아요 안 그러면 뼈가 상해버렸을 거야, 이 오빠만  믿어. 코맹맹이 소리로 지나가는 일곱 번째 앰블런스, 수만 별이 떴다 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오빠, 자꾸 부르니까 코 막히는 오빠, 오빠는 목발 대신 제 허벅다리로 내 다리가 되어 준다고 도끼를 들고 설쳐대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라더니 아이쿠 무거워라, 지게처럼 내 등뼈가 휘고 포대기 같은 내 자궁이 터지려 하잖아요. 안 그러면 뼈마저 상해버리고 없을 걸, 이 오빠만…… 에그  철딱서니야  믿긴 뭘 자꾸  믿으라는 거야. 아무도 찍어먹지 않아 배달시킨 그대로의 춘장처럼  시꺼먼 살점의 오빠가 왕따 당해서는 안 돼 절뚝거리며 사막 너머 아프리카로 향해 가는 길 위의 나는 벌써부터 극성스런 엄마라는 무한대.
   

 

―계간『문학과 사회』(2005.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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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끝내줍니다, 오빠
―밥 시편65
 

이제인

 

 

1.돈만 많이 주면

  
어떤 체위든 OK

23살, 키 167, 젖가슴 사이즈 C컵

오늘밤, 화끈,황홀 하겠지요

전화 부탁해요

춘희


2.장기를 팝니다


어떤 부위든 다 내놓겠습니다

(간,신장,안구,쓸개,골수......)

......심장, 두개골도 가능합니다

혈액O형, 신체 건강 男, 30세


*액수 조정 가능합니다


3.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쭈쭈 빵빵 20 처녀도 아니고

신체 건강 30 미시도 아니고

그동안 한 끼 밥을 얻기 위해

내 유일한 재산인 눈물

삶의 쓴맛, 단맛, 짠맛

그리고 못다 끝낸 연애편지까지

다 팔아버리고 말았는데

누군가에게

 
 

 

―계간『시와 정신』(201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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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생각


  김안

 

  당신은 나의 무덤 속으로 들어옵니다. 당신의 가슴이 발끝이 머리카락이 텅 비고 축축한 나의 무덤 속으로 들어옵니다. 당신은 나의 무덤 속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옷을 널며 오돌오돌 떨며 오빠생각을 부르며, 당신은 나의 낡은 저전거를 고치고 나의 빈 상자를 정돈하고 나의 구멍 난 구두를 닦으며, 그렇게 당신은 나의 무덤을 키웁니다. 호호 언 손을 녹이며 오빠생각을 부르며, 당신은 시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엘 갔다가 마을이 눈을 감을 때쯤 빈 바구니로 되돌아옵니다. 당신이 나의 무덤을 향해 방긋 웃자 나의 무덤에서 아름다리나무가 자랍니다. 나의 무덤은 거대한 눈이 되었다가 입이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아름다리나무를 키우고, 당신은 아름다리나무로 목금을 만듭니다. 당신이 나의 손가락뼈로 목금을 두드리자 손가락뼈에 말랑말랑하고 연한 살이 생겨납니다. 목금은 갈빗대가 되어 부풀어 오릅니다. 당신은 가슴을 열어 파랗게 얼어 있는 주먹만한 당신의 심장을 꺼내 목금 속에 넣고, 당신은 목금 위에 업드린 채 눈을 감습니다. 당신이 오돌오돌 떨며 오빠생각을 부르면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붉게 붉게 젖어듭니다. 당신의 등 위로 소복하게 눈이 쌓입니다. 붉게 타오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소복하게 눈 쌓인 당신의 등 위로 내 무덤이 눕습니다. 당신이 나의 무덤 속으로 들어옵니다.

 

 

―시집『오빠생각』(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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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생각

 

최순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
―『현대시 100년 한국인의 애송童詩 50편 6』(조선일보 연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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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의 누이


―이수익(1942∼ )

 

 

한 고단한 삶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혼곤한 잠의 여울을 건너고 있다.
밤도 무척 깊은 귀가길,
전철은 어둠 속을 흔들리고…
건조한 머리칼, 해쓱하게 야윈
핏기 없는 얼굴이
어쩌면 중년의 내 이종사촌 누이만 같은데
여인은 오늘 밤 우리의 동행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어깨에 슬픈 제 체중을 맡긴 채
송두리째 넋을 잃고 잠들어 있다.
어쩌면 이런 시간쯤의 동행이란
천 년만큼 아득한 별빛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잠시 내 어깨를 빌려주며
이 낯선 여자의 오빠가 되어 있기로 한다.
전철은 몇 번이고 다음 역을 예고하며
심야의 지하공간을 달리는데…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11』(동아일보. 2014년 0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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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민음사, 2004)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1』 (조선일보 연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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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 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이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 계간『문학수첩』(200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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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와 화로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슬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1929년>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6』(조선일보 연재, 2008)
(『현해탄』.동광당 서점. 1938 :『임화전집』풀빛. 198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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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내들이여


홍해리

 

 

오빠는 오라버니의 어린이 말이요
오라버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남녀가 만나면 모두가 오빠가 되는 것인지
한배에서 먼저 태어난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
요즘 젊은 아내들은 한살되고 나서도
남편을 오빠 오빠 하고 징그럽게 부른다
한집에서 한솥엣밥 먹고 살다 보면
아내는 허리 없는 아줌마가 되고
길짐만 지던 남편은 아저씨가 되고 만다
우리 아저씨 우리 아저씨 하고 밀어내는
공동 소유의 촌수로 바뀌게 된다
몸이 가까울 때는 남매였던 사이
몸이 멀어지다 보니 관계도 뜸해져
항렬行列이 또 바뀌어 아저씨가 되고 만다
한솥밥 먹고 송사할 일도 아닌데
부부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늙으면 아기가 된다 하니
아저씨가 더 나이를 먹으면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고 부를 것인가
세상의 아내들이여
서양사람들의 호칭처럼 달콤하지는 못해도
남편은 그대의 짝이 되어 사는 남자가 아닌가
젊어서도 남편은 남의 편이고
늙어도 남편은 내 편 아닌 남편이란 말인가
이러다 그대들의 자식들 세대에는
딸이 제 오빠 보고 여보 당신 하지 않겠는가
오빠 동생이 자식을 낳으면 촌수는 어떻게 되고
호칭은 뭐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들딸인가 아니면 조카인가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 한살되다 :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되다, 두 물건이 한데 붙어 한 물건처럼 되다.

 

 


―계간『딩아돌하』(201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