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이상함
김경미
새소리가 싫은 것
잦은 이사와 기차는 좋지만
둥근 산책과 등산복이 싫은 것
가만히 있는 건 유리창처럼 근사한 일
유리창 옆에 혼자 있는 건
산꼭대기 구름처럼 높은 일
독시체르* 같은 이름
어딘지 지독한 느낌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그 악기의
손자국 같은 부푼 뺨
슬픔에 담갔다 꺼낸 것들은 안심이 된다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들은
무조건 믿을 만하다
양말을 한쪽만 신는 것
2개는 너무 많거나 아프리카처럼 너무 뜨겁다
높은 굽이 좋은 것
땅과 알맞게 떨어져 걸어야 애정도 생긴다
죄와 벌쯤이어도 괜찮다
나뭇잎들의 성격은 해마다 4개쯤이고
망치와 못 틈에 끼인 내 성격은
오늘의 7개에서 내일은 2개로 줄었다가
3개로 버려 지금은 마이너스다
당신은 몇 개를 발휘하고 몇 개를 휘발시켰는지
이 행복이 다 실패지 뭐겠는가 포기하다가도
사실 더 이상한 존재가 있으니
배와 비행기이다
어디든 가고 싶다고
쇳덩이가
물 위를 걷고 허공을 날다니
더 이상한 존재는 물고기들
물속에서 익사하지 않다니
다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나만 빼놓고 다들 지독하다니!
알약은 절대 못 삼켜
사람도 가루를 내야만 먹는 나인데
* 티모페이 독시쩨르Timofei Dokshitser(1921~2004): 우크라이나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계간『창작과비평』(201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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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이라는 이상함
김경미
나만 이상한가 나만 게와 채송화가 일매梅와 일국菊의 이름을 얻은 일란성 쌍둥이인가
인기 없는 슬로바키아에게 댁이 그 유명한 슬로베니아냐고 물은 적이 없는지 마주칠 때마다 이름 앞뒤를 바꿔부르는 이에게 관대한지 오래된 취미는 흩어진 모래알, 미치는 반복, 중첩된 뜻, 제 1한강교 건너 갇힐목, 삼각팬티 같은 시간들, 어깨까지 잠기는 허영과 허황, 발목을 닮은 관, 바퀴 달린 여행용 트렁크 사제끼기, 습관적으로 자신에게만 치렁치렁 매달리기
당신은 일년에 몇천 몇만개까지 나뭇잎을 세어봤는지 당신은 늘 양말 두쪽을 가지런히 신고 단추는 남녀화장실처럼 왼쪽이나 오른쪽 꼭 구별해서 꿰고 일생에 다섯명 이상의 친구가 반드시 있어야 성공이고 삼각관계보다는 2인삼각이 더 낫고 웃음의 부피가 알맞고 지푸라기가 아니고 수치스럽지 않고 당신들은 안그런가 나만 이상한가 자신이 내 엄마라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당신들은 없는가 나만 이상한가
―웹진『시인광장』(201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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