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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 / 김기택 - 감사해요 동전들 / 김영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1. 2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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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


김기택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러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끔 등뼈 아래 숨어 사는 작은 얼굴 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 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태아의 잠』. 문학과지성사. 199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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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동전들

  

김영수

 

 

그는 자갈치 해역을 지나는 한 마리 물고기

기쁜 숨을 죽이며 코앞에 있는 바닥으로

납작한 생을 천천히 젓는 저녁

아랫배 욕창을 참으며 가는 물길은

언제나 거세고 쉴 곳은 없다

 

바구니로 떨어지는 동전소리

진저리치듯 고개를 비틀어 올리는 것이

감사의 표시임을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간다

토르소 같은 몸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털며

먹이로 받는 한 푼 한 푼에 울컥 목젖이 잠긴다

오래도록 절여진 시커먼 바다는

펄떡거리는 희망 하나 키우지 못한 채

슬며시 그를 감추고

 

새 모퉁이를 돌고 돌지만 파장의 어둠은 그보다 앞서고

이제 더 밀어 닿을 따뜻한 연안은 없다

감추고 싶은 신음소리 하얀 비늘로 떨어지고

수북해도 바닥인 동전 몇 개 껴안고

축축한 저녁은 혼자 서성이는데

아무도 없는 얼음 창고 뒤편

잘린 손에 얼굴을 묻으러

그는 설잠을 누인다

 

 


―시집『감사해요 동전들』(詩와 에세이,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