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진달래꽃』. 매문사. 1925 : 『김소월 전집』. 문장.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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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가는이유,의역사
―박의상(1943∼)
산에 갔지
처음엔 꽃을 보러 갔지
새와 나무를 보러 갔지
다음엔 바위를 보러 갔고
언제부턴가 무덤을 보러 갔지
그리고 오늘부터는
저것들 보자고 산에 가지
산 아래 멀리 저어기
강가의 새 도시에
우뚝 선 것들,
번쩍이고 으르렁대는
세상에, 저 예쁜 것들,
야호! 야호!
그래, 어디, 어디,
나, 다시 보자!고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425』(2015년 0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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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며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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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그림자
이순희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에게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고 간다
자신의 비밀과 허물을 뱀처럼 벗어놓고서
다행히 그에겐 모든 걸 숨겨줄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런 그가 깊고 조용한 그녀를 보는 순간
그동안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다 풀어놓고 싶어졌다
어머니의 고요한 품을 더듬어 찾듯이
그 응달에 다 풀어내고 싶어졌다
―시집 『꽃보다 잎으로 남아』(서정시학,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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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김규동
명산 아닌
그 산이
두어 점 구름 아래
조용히 누웠는 이름 없는 그 산이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햇살이 부서져
황금빛으로 물든
오솔길에는
빨갛게 익은 열구밥이
정물화같이
푸른 대기 가운데 고정되었다
바람과 짐승과 안개가
산 저편으로 잦아든 뒤
해 기울고
소달구지 하나 지나지 않는
신작로길이
영원처럼 멀었다
바다 우짖음 소리도
강물의 고요한 숨결도
알지 못하나
소박한 자태로 하여
쓸쓸한 기쁨 안겨주던 산
어린 나를 키워준 산이
탕아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시여
너의 고뇌와 눈물의 아름다움
그리워하지 않은 때 없으나
이룬 것 없이
죄만 쌓여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고향 하늘
아, 철없이 나선
유랑길
몸은 병들어 초라하기 짝이 없으나
받아주리라 용서해주리라 너만은
이름 없는 나의 산.
―시집『느릅나무에게』 (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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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올라
김형영
산꼭대기에 올라
소나무 밑에 누워 본다.
얽히고설킨 가지와
가지마다 푸른 솔잎 사이로
바람과 구름 따라
근심 걱정이 씻은 듯 사라진다.
하늘을 향해 몇백 년을 자란
늙은 소나무 밑에 누워 있으면
내가 가장 가벼워지는 시간,
어디든 춤추며 날아갈 것 같다.
좋은 날 좋은 시 택해서
막걸리 한두 말 퍼다
뿌리 깊이 부어드려야겠다.
—시집『땅을 여는 꽃들』 (문학과지성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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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저쪽
카알 붓세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아, 남 따라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김희보 엮음『世界의 名詩』(가람기획 증보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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