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127 바늘 끝에서 피는 꽃 이사랑
청석골의 단골 수선집 늙은 재봉틀 한 대 아마, 지구 한 바퀴쯤은 돌고도 남았지 네 식구 먹여 살리고 아들딸 대학까지 보내고 세상의 상처란 상처는 모조리 꿰매는 만능 재봉틀 실직으로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고 이별로 찢어진 가슴과 술에 멱살 잡힌 셔츠를 감쪽같이 성형한다 장롱 깊숙이 개켜둔 좀 먹은 내 관념도 새롭게 뜯어고치는 재봉틀 작은 것들은 가슴을 덧대어 늘리고 막힌 곳은 물꼬 트듯 터주고 불어난 것들 돌려막으며 무지개실로 한 땀 한 땀 땀 구슬을 꿰어 서러움까지 깁고 있다 무더운 여름 낡은 그림자를 감싸 안고 찌르륵 찌르륵 희망은 촘촘 재생시키고 구겨진 자존심은 반듯하게 세워 돌려준다 일감이 쌓일수록 신나는 재봉틀 오늘도 허밍허밍 즐겁다 별별 조각난 별들을 모아 퀼트 하는 밤 바늘 끝에서 노란 달맞이꽃들이 환하게 피어났다
―시집『적막 한 채』(디시올, 2015) |
바늘 끝에서 피는 꽃
이사랑
청석골의 단골 수선집 늙은 재봉틀 한 대
아마, 지구 한 바퀴쯤은 돌고도 남았지
네 식구 먹여 살리고 아들딸 대학까지 보내고
세상의 상처란 상처는 모조리 꿰매는 만능 재봉틀
실직으로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고 이별로 찢어진 가슴과 술에 멱살 잡힌 셔츠를
감쪽같이 성형한다
장롱 깊숙이 개켜둔 좀 먹은 내 관념도 새롭게 뜯어고치는 재봉틀
작은 것들은 가슴을 덧대어 늘리고
막힌 곳은 물꼬 트듯 터주고 불어난 것들 돌려막으며
무지개실로 한 땀 한 땀 땀 구슬을 꿰어 서러움까지 깁고 있다
무더운 여름 낡은 그림자를 감싸 안고 찌르륵 찌르륵
희망은 촘촘 재생시키고 구겨진 자존심은 반듯하게 세워 돌려준다
일감이 쌓일수록 신나는 재봉틀 오늘도 허밍허밍 즐겁다
별별 조각난 별들을 모아 퀼트 하는 밤
바늘 끝에서 노란 달맞이꽃들이 환하게 피어났다
―시집『적막 한 채』(디시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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