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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기다리며/안도현 - 카톡 좋은 시 166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8. 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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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166

  

   고래를 기다리며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시집바닷가우체국(문학동네, 1999)

 

  

 

고래를 기다리며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시집바닷가우체국(문학동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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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번쩍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를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이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 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시집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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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기다리며

 

이사랑

 

 

땅 속 깊은 곳

그곳엔 꿈에서 만난 푸른 고래가 살고 있다

고래가 지하 땅 속으로 이동해 왔다는 소식은 지금껏 없었지만

나는 그를 고래라고 부른다

(누가 장생포에서 고래를 기다리는가)

어제 저녁에도

수백 미터 지하에서 요나처럼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는 멀쩡히 살아나왔다

밀물과 썰물의 경계인 세상 바다에서

먹이를 통째로 삼켰다가 고스란히 지상으로 토해내는

이제 고래는 바다의 동물이 아니다

앞만 보며 힘차게 달리는 고래

망망한 바다에서 섬으로 떠다니다가

육지로 돌아온 너는 포유류

금속으로 진화한 것이 분명하다

한 발 물러서라

우르르 지축을 울리며 파도가 밀려온다

미래로 꿈을 실어 나르는 푸른 고래가

지금,

상록수역을 향해 초고속으로 달려온다

 

 

 

월간우리 (200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