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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시 모움 -김인욱/박후기/김왕노/이영춘/장철훈/김왕노/차승호/한경용/김정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11. 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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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자식


김인육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 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닐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에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못 죽고 사는 내 신세가 고령장이지
 

어머니의 정신 맑은 몇 가닥 말씀에, 폐부에 찔린 나는
병든 개처럼 허정거리며


21세기 막된 고려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천하에 몹쓸, 후레자식이 되어
퉤퉤, 돼먹지 못한 개살구가 되어

 


―계간『다층』(200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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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한 포대

 

  박후기 

 

 

 천일염 한 포대, 베란다에 들여놓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누런 간수 포대 끝에서 졸졸 흘러내립니다. 오뉴월 염밭 땡볕 아래 살 태우며 부질없는 거품 모두 버리고 결정(結晶)만 그러모았거늘, 아직도 버릴 것이 남아 있나봅니다.

 

 치매 걸린 노모, 요양원에 들여놓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멀쩡하던 몸 물먹은 소금처럼 녹아내립니다. 간수 같은 누런 오줌 가랑이 사이로 줄줄 흘러내립니다. 염천 아래 등 터지며 그러모은 자식들 뒷짐 지고 먼 산 바라볼 때, 입 삐뚤어진 소금 한 포대 울다가 웃었습니다.

 

 

 

-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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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나큰 수의

 

김왕노

 

  어머니 요양원에 계신다. 요양원에 가면 둘째 시인 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나 미안하지 말라고 병들고 늙으면 요양원에 있는 것이 어머니 편하고 자식들 다 편한 일이라며 누누이 말하지만 요양원이 현대식이라 위생적이고 넓고 의료시설 잘 갖춰진 곳이지만 집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안드리지 못하는 마음이 요양원에 면회 갔다 올 때마다 무릎이 세상 모서리에 부딪친 듯 생채기 하나 둘 늘어난다.

 

  늙어도 어머니 욕심이 없을까? 어머니와 친한 할머니 자식이 비싸고 질 좋은 수의 미리 준비해 놓았다고 날마다 자랑이라고 해서 어머니가 죽으면 뭐 입고 자시고 알기나 아나, 그냥 구름이니 새벽이니 바람이니 햇살이니 다 크나큰 수의라고 여기며 그보다 더 큰 행복 없다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선소리처럼 앞세우고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어머니가 제법 시적으로 말해 주는데 그 말 듣고 참 그렇기도 할 테지 하면서 면회 갔다 나오는 내 마음에 어떤 날보다 더 큰 생채기 하나 슬프게 자리 잡는 것이었다. 

 

 

 

시집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천년의시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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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저쪽 뒷문


이영춘

 

 

어머니 요양원에 맡기고 돌아오던 날
천 길 돌덩이가 가슴을 누른다
“내가 왜 자식이 없냐! 집이 없냐!” 절규 같은 그 목소리
돌아서는 발길에 칭칭 감겨 돌덩이가 되는데


한때 푸르르던 날 실타래처럼 풀려
아득한 시간 저쪽 어머니 시간 속으로
내 살처럼 키운 아이들이 나를 밀어 넣는다면


아, 아득한 절망 그 절벽……
 

나는 꺽꺽 목 꺾인 짐승으로 운다


아, 어찌해야 하나
은빛 바람결들이 은빛 물고기들을 싣고 와
한 트럭 부려놓고 가는 저 언덕배기 집
생의 유폐된 시간의 목숨들을


어머니의 시간 저쪽 뒷문이 자꾸
관절 꺾인 무릎으로 나를 끌어당기는데

 

 

 

-계간『시와 사람』(201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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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세상

 

장철훈 

 

 

아무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요양원 입원 다음날 새벽

당직 간호사가 숨진 아버지를 발견했을 뿐

 

전날 저녁 아버지는 요양원 새 침상에 누워

북쪽 창가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두 바라봄을 바라보는 제3의 눈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던 아버지의

반쯤 풀린 눈에서 내가 읽은 건 체념이었다

일종의 임종으로서의 체념

그건 너무나 조용해 9층 창가가 가장 높은 하늘 같았다

살아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체념

나는 불귀라는 단어에 한동안 붙들려 있었다

돌아오지 않음

아버지의 형제들은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나 역시 돌아가지 않음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쥐뿔도 모르면서

글줄이나 읽었다고

전쟁 세대의 운명을 제멋대로 개관했다

불귀는 누구나 직면하는 최후의 상황이라고

 

이 완강한 허무주의자 아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들

아버지는 북쪽 창가를 바라보는 척 다 읽었던 것이며

마침내 시간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울리는 불길한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아버지의 표정은 화평했다

다시 까매지기 시작한 긴 눈썹이며 대리석처럼 빛나는 머리며

웃는 듯 굳게 닫힌 입술이며

체온은 살아 있는 듯 따스했다

 

아버지와 나는 세 가지의 우연이 겹치고 있다

20세기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삶이라는 전쟁에 종군했다는 것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

 

그러나 아버지가 나에게 주고 가신 건

이 세 가지의 우연을 초월한 체념의 데드마스크였다

 

불귀돌아오지 않음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돌아옴

 

나는 윤회를 믿지 않지만

아버지가 어느 은하계 다른 별의 한적한 마을에서

아침 꾀꼬리 소리에 다시 태어났다고 믿는다

  

 

 

계간문학의 오늘(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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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나큰 수의

  김왕노

 

 

  어머니 요양원에 계신다. 요양원에 가면 둘째 시인 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나 미안하지 말라고 병들고 늙으면 요양원에 있는 것이 어머니 편하고 자식들 다 편한 일이라며 누누이 말하지만 요양원이 현대식이라 위생적이고 넓고 의료시설 잘 갖춰진 곳이지만 집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안드리지 못하는 마음이 요양원에 면회 갔다 올 때마다 무릎이 세상 모서리에 부딪친 듯 생채기 하나 둘 늘어난다.

 

  늙어도 어머니 욕심이 없을까? 어머니와 친한 할머니 자식이 비싸고 질 좋은 수의 미리 준비해 놓았다고 날마다 자랑이라고 해서 어머니가 죽으면 뭐 입고 자시고 알기나 아나, 그냥 구름이니 새벽이니 바람이니 햇살이니 다 크나큰 수의라고 여기며 그보다 더 큰 행복 없다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선소리처럼 앞세우고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어머니가 제법 시적으로 말해 주는데 그 말 듣고 참 그렇기도 할 테지 하면서 면회 갔다 나오는 내 마음에 어떤 날보다 더 큰 생채기 하나 슬프게 자리 잡는 것이었다.

 

 

시집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천년의시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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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문장

 

차승호 

 

 

노인네가 집에 왔다

편안한 장소에서 심신 돌보던 노인네가

명절 쇠러 왔다,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

힘 좋은 아우가 안고 떠메고 왔다

 

황소바람에 창틀 흔들리듯

덜컹거리던 틀니까지 빼버린 팥죽 할배

오래 견뎌온 세월의 합병증 뇌졸중으로

틀니 빼기 전부터 말소리 어눌하던 팥죽 할배

 

무슨 할 말 있는지

자꾸 자리 옆으로 나를 불러 앉히고

웅얼웅얼웅얼……, 머리맡 수북하게

쉴 새 없이 쌓이는 해독 불가의 말씀들

 

그류그류그렇구먼유……, 나는 내 말을 하고

노인네는 노인네 말을 한다

 

요즈음 세간의 화두가 소통이라지만

갤럭시 S4 첨단 소통기까지 등장하여

두루 막히지 않고 통해야 된다지만

 

웅얼웅얼웅얼……,

그류그류그렇구먼유……,

말이란 그저 함께 있음의 추임새일 뿐

농투성이 노인네 군대 가듯 요양원 갈 때까지

얼굴 마주 바라보며

마침표 없는 표정의 긴 문장을

읽고 쓴다

 

 

시집얼굴 문장(시산맥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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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조각

 

한경용

 

노인도매상가라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의 종합고독세트를 디스플레이하면

참외를 깎아 먹던 어릴 때의 냄새가 있습니다.

건반 위에서 키운 향긋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제주도의 43 구덩이에 숨었다가

눈꽃 속의 총알을 피해 살아나신

달빛 조각이 있습니다.

그 멜로디의 굴레에서 즉흥 모자를 쓰고

국제시장에서 비로도 장사를 하며 여덟 식구를 먹여 살렸던 당신의 스무 살,

맹렬한 시장터에 연꽃 향기를 세일하신 부처님이

수건으로 지친 마음을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

강렬한 묘사와 터치를 하며

제주도의 산과 바다를 누볐던

바람은 당신의 악보

환상의 올레를 연주하는

페인트가 벗겨진 단층집 나일론 빨랫줄 위로

팔짱을 낀 햇빛이 어슬렁거리면

어머니의 뒷마당에서 나오는 안개 바람으로 말려 올린 아이들,

병실에 놓인 팬지가 설레던

하늘에 속살이 묻힐 시간

눈먼 정원에 봄을 버무리던

당신의 달이 내 바다로 와,

바지선을 예인하는 아버지를 따라가시고 계십니다.​​​​

  

 

​―계간 시에(2010년 가을호 등단시 중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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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월(滿月)


    ―김정수(1963∼ )

 

 

  막내네 거실에서 고스톱을 친다 버린 패처럼 인연을 끊은 큰형네와 무소식이 희소식인 넷째 대신 조커 두 장을 넣고 삼형제가 고스톱을 친다 노인요양병원에서 하루 외박을 나온 노모가 술안주 연어 샐러드를 연신 드신다 주무실 시간이 진작 지났다 부족한 잠이 밑으로 샌다 막내며느리가 딸도 못 낳은 노모를 부축해 화장실로 가는 사이 작은 형이 풍을 싼다 곁에서 새우잠을 자던 아내를 깨운다 며느리 둘이 노모의 냄새를 물로 벗겨 낸다 오래 고였던 냄새가 흑싸리피 같은 피부를 드러낸다 술이 저 혼자 목구멍으로 넘어가다 단내를 풍긴다 작은형이 싼 풍을 가져가며 막내가 의기양양하게 쓰리고를 외친다 이번 판은 무조건 상한가, 막내 얼굴에 만월이 뜬다 고스톱 한 판에도 손에 땀이 찬다 허투루 버리는 피도 없는데, 목구멍을 거슬러 오르는 숨결이 꼴깍꼴깍 거칠다 어머니가 똥을 싸셨는데 아들들은 고스톱만 치네요 막내며느리의 거침없는 말씀에 형제들이 쓰리고에 피박까지 쓴다


  공산명월(空山明月)이 연어 위에 붉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84』 (동아일보. 2014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