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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 4편)
진달래 산천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 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놓고 가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엔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조선일보』. 1959 3. 24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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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내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내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짖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러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고대무화)』. 1969. 5 :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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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同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52인 시집』. 신구문화사. 1967 :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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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신동엽
톡 톡
두드려 보았다.
숲 속에서
자라난 꽃대가리.
맑은 아침
오래도
마셨으리.
비단 자락 밑에
살 냄새야.
톡 톡
두드리면
먼 상고(上古)까장 울린다
춤추던 사람이여
토장국 냄새.
이슬 먹은 세월이여
보리 타작 소리.
톡톡
두드려 보았다.
삼한(三韓)적
맑은 대가리.
산 가시내
사랑. 다
보았으리
(『아사녀』. 문화사. 1963 :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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