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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복효근
동아줄로 꼬인 번뇌의 길
일보일배 온몸으로 걷는다
다시는 못 올 길
상처가 아닌 곳은 없다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20』(머니투데이, 2014년 10월 20일)
그러고 보면 짧든 길든 제 몫의 삶을 사는 동안 행복을 느끼는 시간은 유독 짧고 미미하다. 그러므로 한 생은 잠시잠깐의 행복과 크고 작은 근심과 걱정이 켜켜이 쌓인 주름으로 형성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일이겠다. 다만 그 정도이다. 생은 고해라는 정도 말이다. 그런데 그 고해가 저리도 질서정연하고 견고한 것이라는 사실을 시인의 시를 보면서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스치고 지나갈 행복을 찾아 헤매는 생이기보다 내게 주어진 생의 이면들을 잘 다독이며 갈무리해가는 일, 생의 고통도 저렇듯 한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생의 바닥이 성지인양 일보일배 이어가고 있는 저 벌레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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