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 모음

홍시/이호준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21)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9. 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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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이호준

 

 

먼 길 떠난 길안댁 비탈밭에 묻고 오니

우물가 늙은 감나무 늦은 조등 켜 놓았다

붉은 눈물 그렁그렁 내달았다

 

그동안 혼자 산 게 아니었구나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21(머니투데이, 20141024)


  이별은 늘 막막하다. 깜깜하다. 준비한 이별이든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든 황망하기 그지없고 막막하기 그지없다. 어둡기만 하다. 그래서였을까. 장례를 치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내걸어 두었던 조등, 실은 산 사람 마음에 든 이별의 슬픔을 덜고 조문 오는 사람들과 환하게 만나 서로를 위로하라는 의미로 밝혀두는 것은 아닐지. 예로부터 불은 인간의 이상사회를 상징하는 것이고 보면, 유족이 이별로 인한 비애와 절망 속에 갇혀버릴 것을 염려하여 조등부터 밝혀온 것은 아닐지.

  가을이 깊어가고 기온 차가 커지자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부음이 이른 낙엽 지는 소리처럼 잦은 때이기도 하다. 살아서 외롭거나 외롭지 않거나 누구나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한 번은 넘지만 결코 혼자는 아닌 생이었다는 것을, 이 가을 시인은 홍시를 들어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리.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혼자가 아닌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