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과 시인
이상국
어느 해 추석 앞집에 든 도둑이
내 차 지붕으로 뛰어내리던 밤,
감식반이 와서 족적을 뜨고
나는 파출소에 나가 피해자 심문을 받았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그리고
하는 일 등을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달려라 도둑」 이라는 시를 썼다
들키는 바람에 훔친 것도 없으니까
잡히지 말고 추석 달빛 속으로
그림자처럼 달아나라는 시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경찰서에서 그 사건을 불기소처분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나라 경찰은 몰라보게 편리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도둑의 무게만큼 찌그러진 차
지붕을 새로 얹는 데 만만찮은 수리비에 대하여서는
앞집은 물론 경찰도 전혀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 시로 원고료를 소소하게 받긴 했으나
그렇다고 이미 발표한 시를 물릴 수는 없고
그래서 나는 그 도둑이라도
이 시를 읽어주었으면 하는데......
―시집『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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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도둑/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글세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네랑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말야.
앞집 아저씨는 아직 제 정신이 아니다.
―그러게, 그리고 요즘 현금 가지고 있는 집이 어딨어, 다 카드 쓰지. 거 돌대가리 아냐?라고 거드는 피아노집 주인 말끝에 명절내가 난다.
한참 있다가 누군가 이랬다.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이웃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밤이슬 내린 차 지붕에 화석처럼 찍혀있는 도둑의 족적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한 사내가 열나흘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계간『내일을 여는 작가』(2008. 겨울호)
―시집『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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