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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김행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5. 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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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시집『겨울-나무로 부터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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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김행숙  

 

 

무덤을 안은 듯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죽은 사람 비슷하다.  

 

목소리는 나를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도처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언젠가는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 헤매다가 내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직접 들은 적도 있다. 나는 나를 쫒아갔지만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또 무서운 꿈을 꿨구나, 어린 시절에 엄마는 나의 혼란을 그렇게 정리해주었다.  

 

꿈이면 무서워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고, 죽여도 괜찮은 것일까. 그래서 인생은 꿈같다고 말할 때 두 눈을 껌벅이는 것일까. 인생이 꿈같으면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었다가…… 진짜처럼 죽었다가 또 거짓말처럼 살아나기를 얼마나 되풀이하게 되는걸까. 이것이 대체 몇 번째 겨울나무란 말이냐. 분명히 꿈에서 비명을 질렀는데 일어나보면 현실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몇 번째 봄나무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한 그루 겨울나무를 알몸처럼 껴안고 있다. 펄펄 흰 눈이 내리고…… 설령 여기서 내가 잠이 든대도 이것은 꿈같지 않다.  

   

 

 

월간현대시(2017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