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윌리엄 워즈워드
무지개를 하늘에 바라볼 때면
나의 가슴 설렌다.
내 생애가 시작될 때 그러하였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러하거니
나 늙어진 뒤에도 제발 그래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여라.
바라기는 내 목숨의 하루하루여
천성의 자비로써 맺어지거라.
-김희보 편저『世界의 명시』(종로서적, 1987)
-----------------------------------------
무지개
이홍섭
서산 너머에서 밤새 운 자 누구인가
아침 일찍 무지개가 떴네
슬픔이 저리도 둥글 수 있다면
내 낡은 옷가지 서넛 걸어놓고
산 너머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겠다
아픔이 저리도 봉긋할 수 있다면
분홍빛 당신의 가슴에
내 지친 머리를 파묻을 수 있겠다
서산에 뜬 무지개는
당신의 눈물처럼 참 맑기도 하지
-시집『터미널』(문학동네, 2011)
-----------------------------------------
무지개
이홍섭
서산 너머에서 밤새 운 자 누구인가
아침 일찍 무지개가 떴네
슬픔이 저리도 둥글 수 있다면
내 낡은 옷가지 서넛 걸어놓고
산 너머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겠다
아픔이 저리도 봉긋할 수 있다면
분홍빛 당신의 가슴에
내 지친 머리를 파묻을 수 있겠다
서산에 뜬 무지개는
당신의 눈물처럼 참 맑기도 하지
-시집『터미널』(문학동네, 2011)
-------------
무지개 1
임영조
소나기 떼 쓸고 간 동녘 하늘 끝
매봉산 형제가 줄넘기를 한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골 빛 색실로 꼰 동아줄 잡고
내 마음도 들썩들썩 따라 넘는다
줄을 돌려 산 너머 산 너머 가면
그 옛날 몰래 가슴만 두근대다
놓쳐버린 절반의 첫사랑이 있을까
일곱 빛 레이스로 열린 하늘 문
저 두렵고 환한 돔으로 들어가면
에덴동산 마루엔 고해소가 보일까
푸른 망토 두른 사제라도 만나면
내 당장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도
까닭 없이 설레는 무지갯빛 사랑을
신의 나라로 망명을 꿈꿔온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사면을 받으리라
하늘로만 솟다가 지친 그리움
땅에 박고 휘영청 활처럼 휘어
팽팽하게 당기는 칠현금 소리
빨 주 노 초 파 남 보
함부로 손타거나 넘보지 말라고
천지간에 쳐놓은 화사한 금(禁)줄이다
매봉산 형제가 친 쌍끌이 그물이다.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제6시집 시인의 모자)』(천년의 시작, 2008)
----------------------------------
무지개 2
임영조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
이승에서 다시 만나 맺자고
서로 나눈 반쪽 가락지
오늘 홀연 서산 위에 떠 있네
사랑의 증표 아직 녹슬지 않고
일곱 빛깔 섬섬히 눈이 부신데
볼수록 내 가슴 마냥 뛰는데
그대는 어찌 안 보이는가?
그 동안 나는 한 점 뜬구름으로
마을에서 산으로 들고 강으로
그대 찾아 섬도 가고 절에도 갔네
오늘도 매봉에 혼자 올라 야호!
앞산이 무너져라 불러도 감감
그대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
말 못할 그 무슨 속사정 있길래
둘이 나눈 무지개표 가락지
그 반쪽 사랑이 이제야 보여주나?
저무는 하늘가에 슬며시 내건
저 눈 아리게 빛 부신 파혼(破婚)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제6시집 시인의 모자)』(천년의 시작, 2008)
------------
무지개
김진경
아이들이 돌아가 텅 빈 운동장
한구석 수돗가
오랜 휴식과 비어 있음이 녹으로 슬고
그 무게 견디지 못해
물방울 톡톡 떨어진다
그렇지, 저 오랜 휴식과
비어 있음의 무게 없다면
어떻게 손바닥으로 막아 쏘아올릴 만큼
물 쏟아지랴
아이들이 쏘아올린 물안개 속에
어떻게 무지개 피어나랴
―시집『지구의 시간』(실천문학사, 2004)
----------------
무지개
최승호
흰 대머리바위들을 적시며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더니
인왕산 위에
무지개 떴다
동물원 우리에서 보았던
앞뒤가 영 딴판인 공작새
부채 같은 꼬리 깃털들 떠오른다
굳이 새삼스럽게 말을 하자면
내 몸 안에도 무지개가 있는데
다름아닌 五慾七情이 나의 무지개
찬연할 때 있다
음울할 때 있다
―시집『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열림원, 2003)
----------------
무지개를 사랑한 걸
―허영자(1938∼)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
풀잎에 맺힌 이슬
땅바닥을 기는 개미
그런 미물을 사랑한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덧없음
그 사소함
그 하잘 것 없음이
그때 사랑하던 때에
순금보다 값지고
영원보다 길었던 걸 새겨두자
눈멀었던 그 시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쁨이며 어여쁨이었던 걸
길이길이 마음에 새겨두자.
―일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4』(동아일보, 2015년 09월 25일 금요일)
ㅡ시집『빈 들판을 걸어가면』(열음사, 1984)
----------------------
내 전생은 무지개 귀신
박제천
무명세상 내 애인아
한 일억년쯤 , 눈 귀 입을 봉하고
벼랑끝 괴석이 되어 있을 때
어쩌다 찾아오는 천둥의 못정, 번개의 칼금으로
하루살이 적, 한살이 적의
만남과 헤어짐을 온몸에 새기다가
하늘로 떠올라 무지개귀신이 되었을 때
손각시귀신들 불길로 온몸을 물들인 채
나 여기 있다, 소리치다 사라지는 몽달귀신 보았었다
한시라도 보고싶은 내 애인아
다음 생에는 우리 몸 바꿔 다시 만나자.
이 몹쓸 아수라도 살더라도 풀무치 되어, 동박새 되어,
우리 그렇게 서로 얽혀 먹고 먹히더라도
그리워하다가 미워하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황홀한 사랑을 이어나가자.
내 무명세상 애인아.
—시집『천기누설』(문학아카데미, 2016)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운희 - 아들의 방/아들의 여자 (0) | 2017.05.11 |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김행숙 (0) | 2017.05.05 |
아버지의 등을 밀며/손택수 - 벚꽃 문식/박경희 - 아버지의 소/이상윤 (0) | 2017.04.06 |
장석주 - 한 알/냉이꽃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경종호 (0) | 2017.04.01 |
이상국 -도둑과 시인/달려라 도둑 (0) | 2017.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