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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시 모음 -워즈워드/이홍섭/임영조/김진경/최승호/허영자/박제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5. 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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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윌리엄 워즈워드

 

 

무지개를 하늘에 바라볼 때면
  나의 가슴 설렌다.
내 생애가 시작될 때 그러하였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러하거니
나 늙어진 뒤에도 제발 그래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여라.
바라기는 내 목숨의 하루하루여
  천성의 자비로써 맺어지거라.

 

 

 

-김희보 편저『世界의 명시』(종로서적,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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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이홍섭

 


서산 너머에서 밤새 운 자 누구인가
아침 일찍 무지개가 떴네


슬픔이 저리도 둥글 수 있다면
내 낡은 옷가지 서넛 걸어놓고
산 너머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겠다


아픔이 저리도 봉긋할 수 있다면
분홍빛 당신의 가슴에
내 지친 머리를 파묻을 수 있겠다

 

서산에 뜬 무지개는
당신의 눈물처럼 참 맑기도 하지

 

 


-시집『터미널』(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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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이홍섭

 


서산 너머에서 밤새 운 자 누구인가
아침 일찍 무지개가 떴네


슬픔이 저리도 둥글 수 있다면
내 낡은 옷가지 서넛 걸어놓고
산 너머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겠다


아픔이 저리도 봉긋할 수 있다면
분홍빛 당신의 가슴에
내 지친 머리를 파묻을 수 있겠다

 

서산에 뜬 무지개는
당신의 눈물처럼 참 맑기도 하지

 

 


-시집『터미널』(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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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1


임영조

 


소나기 떼 쓸고 간 동녘 하늘 끝
매봉산 형제가 줄넘기를 한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골 빛 색실로 꼰 동아줄 잡고
내 마음도 들썩들썩 따라 넘는다
줄을 돌려 산 너머 산 너머 가면
그 옛날 몰래 가슴만 두근대다
놓쳐버린 절반의 첫사랑이 있을까
일곱 빛 레이스로 열린 하늘 문
저 두렵고 환한 돔으로 들어가면
에덴동산 마루엔 고해소가 보일까
푸른 망토 두른 사제라도 만나면
내 당장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도
까닭 없이 설레는 무지갯빛 사랑을
신의 나라로 망명을 꿈꿔온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사면을 받으리라
하늘로만 솟다가 지친 그리움
땅에 박고 휘영청 활처럼 휘어
팽팽하게 당기는 칠현금 소리
빨 주 노 초 파 남 보
함부로 손타거나 넘보지 말라고
천지간에 쳐놓은 화사한 금(禁)줄이다
매봉산 형제가 친 쌍끌이 그물이다.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제6시집 시인의 모자)』(천년의 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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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2


임영조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
이승에서 다시 만나 맺자고
서로 나눈 반쪽 가락지
오늘 홀연 서산 위에 떠 있네
사랑의 증표 아직 녹슬지 않고
일곱 빛깔 섬섬히 눈이 부신데
볼수록 내 가슴 마냥 뛰는데
그대는 어찌 안 보이는가?
그 동안 나는 한 점 뜬구름으로
마을에서 산으로 들고 강으로
그대 찾아 섬도 가고 절에도 갔네
오늘도 매봉에 혼자 올라 야호!
앞산이 무너져라 불러도 감감
그대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
말 못할 그 무슨 속사정 있길래
둘이 나눈 무지개표 가락지
그 반쪽 사랑이 이제야 보여주나?
저무는 하늘가에 슬며시 내건
저 눈 아리게 빛 부신 파혼(破婚)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제6시집 시인의 모자)』(천년의 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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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김진경

 

 

아이들이 돌아가 텅 빈 운동장

한구석 수돗가

오랜 휴식과 비어 있음이 녹으로 슬고

그 무게 견디지 못해

물방울 톡톡 떨어진다

 

그렇지, 저 오랜 휴식과

비어 있음의 무게 없다면

어떻게 손바닥으로 막아 쏘아올릴 만큼

물 쏟아지랴

아이들이 쏘아올린 물안개 속에

어떻게 무지개 피어나랴

 

 

 

시집지구의 시간(실천문학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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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최승호

 

 

흰 대머리바위들을 적시며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더니

인왕산 위에

무지개 떴다   

 

동물원 우리에서 보았던

앞뒤가 영 딴판인 공작새

부채 같은 꼬리 깃털들 떠오른다   

 

굳이 새삼스럽게 말을 하자면

내 몸 안에도 무지개가 있는데

다름아닌 五慾七情이 나의 무지개   

 

찬연할 때 있다

음울할 때 있다

 

 

 

시집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열림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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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사랑한 걸


 허영자(1938)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   

 

풀잎에 맺힌 이슬

땅바닥을 기는 개미

그런 미물을 사랑한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덧없음

그 사소함

그 하잘 것 없음이

그때 사랑하던 때에

순금보다 값지고

영원보다 길었던 걸 새겨두자

 

눈멀었던 그 시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쁨이며 어여쁨이었던 걸

길이길이 마음에 새겨두자 

 

 

 

일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4(동아일보, 20150925일 금요일)

시집빈 들판을 걸어가면(열음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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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생은 무지개 귀신

 

박제천

 

 

무명세상 내 애인아

 

한 일억년쯤 , 눈 귀 입을 봉하고

벼랑끝 괴석이 되어 있을 때

 

어쩌다 찾아오는 천둥의 못정, 번개의 칼금으로

하루살이 적, 한살이 적의

만남과 헤어짐을 온몸에 새기다가

하늘로 떠올라 무지개귀신이 되었을 때

 

손각시귀신들 불길로 온몸을 물들인 채

나 여기 있다, 소리치다 사라지는 몽달귀신 보았었다

 

한시라도 보고싶은 내 애인아

다음 생에는 우리 몸 바꿔 다시 만나자.

 

이 몹쓸 아수라도 살더라도 풀무치 되어, 동박새 되어,

우리 그렇게 서로 얽혀 먹고 먹히더라도

 

그리워하다가 미워하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황홀한 사랑을 이어나가자.

 

내 무명세상 애인아.

 

    

 

시집천기누설(문학아카데미,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