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ㅡ시집『겨울-나무로 부터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4)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김행숙
무덤을 안은 듯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죽은 사람 비슷하다.
목소리는 나를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도처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언젠가는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 헤매다가 내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직접 들은 적도 있다. 나는 나를 쫒아갔지만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또 무서운 꿈을 꿨구나, 어린 시절에 엄마는 나의 혼란을 그렇게 정리해주었다.
꿈이면 무서워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고, 죽여도 괜찮은 것일까. 그래서 인생은 꿈같다고 말할 때 두 눈을 껌벅이는 것일까. 인생이 꿈같으면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었다가…… 진짜처럼 죽었다가 또 거짓말처럼 살아나기를 얼마나 되풀이하게 되는걸까. 이것이 대체 몇 번째 겨울나무란 말이냐. 분명히 꿈에서 비명을 질렀는데 일어나보면 현실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몇 번째 봄나무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한 그루 겨울나무를 알몸처럼 껴안고 있다. 펄펄 흰 눈이 내리고…… 설령 여기서 내가 잠이 든대도 이것은 꿈같지 않다.
―월간『현대시』(2017년 4월호)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관료/김남주 - 관료/박성규 (0) | 2017.05.30 |
---|---|
정운희 - 아들의 방/아들의 여자 (0) | 2017.05.11 |
무지개 시 모음 -워즈워드/이홍섭/임영조/김진경/최승호/허영자/박제천 (0) | 2017.05.04 |
아버지의 등을 밀며/손택수 - 벚꽃 문식/박경희 - 아버지의 소/이상윤 (0) | 2017.04.06 |
장석주 - 한 알/냉이꽃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경종호 (0) | 2017.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