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시집『붉디 붉은 호랑이』(애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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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 장석주(1955∼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일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동아일보, 2016년 09월 2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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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꽃
장석주
여기 울밑에 냉이꽃 한 송이 피어 있다.
보라, 저 혼자
누구 도움도 없이 냉이꽃 피어 있다!
영자, 춘자, 순분이, 기숙이 같은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계집애들 이름 같은,
촌스럽지만 부를수록 정다운
전라남도 벌교쯤에 사는 아들 둘 딸 셋 둔
우리 시골 이모 같은 꽃!
냉이꽃
어찌 저 혼자 필 수 있었을까.
한 송이 냉이꽃이 피어나는 데도
움트는 씨앗이 꿈틀거리는 고단한 생명 운동과
찬 이슬,
땅 위를 날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몇 날의 야밤과
피어도 좋다는 神의 응낙,
줄기와 녹색 이파리를 매달고 키워준 햇볕과
우주적 찰나가 필요하다!
―시집『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문학과지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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