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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대추 한 알/냉이꽃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6. 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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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시집붉디 붉은 호랑이(애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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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장석주(1955)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일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동아일보, 2016092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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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꽃


장석주

 


여기 울밑에 냉이꽃 한 송이 피어 있다.
보라, 저 혼자
누구 도움도 없이 냉이꽃 피어 있다!


영자, 춘자, 순분이, 기숙이 같은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계집애들 이름 같은,
촌스럽지만 부를수록 정다운
전라남도 벌교쯤에 사는 아들 둘 딸 셋 둔
우리 시골 이모 같은 꽃!


냉이꽃
어찌 저 혼자 필 수 있었을까.

 

한 송이 냉이꽃이 피어나는 데도
움트는 씨앗이 꿈틀거리는 고단한 생명 운동과
찬 이슬,
땅 위를 날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몇 날의 야밤과
피어도 좋다는 神의 응낙,
줄기와 녹색 이파리를 매달고 키워준 햇볕과
우주적 찰나가 필요하다!

 

 


―시집『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문학과지성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