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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시 모음 -함민복/최윤근/김명원/김성규/복효근/도종환/장석남/이문재/유재영/손세실리아/박기섭/이정훈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6. 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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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함민복

 

 

저 목소리 들어봐선

아닌 것 같다

 

저리 곱고

깊은 소리

 

눈빛처럼 다급하게

알을 낳았으리라

 

염치머리 없다고

미안 미안하다고

 

울어 울어도

죄 가시지 않는다고

 

이 산 저 산에

무릎 꿇는 울음 메아리

 

 

 

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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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최윤근

 

 

뻐꾸기 새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삶의 코너를 돌 때마다 숲 속에서 새가 운다

뻐꾸기 울음소리다

사이드레거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병으로

그녀가 떠났다

그녀를 묻고 내려올 때

그 새가 울었다

그녀와 같은 음정으로 노래하면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 새가 울었다

뻐꾸기 소리를 기다리던 한여름이 지나 있다

그해 여름

열무김치가 맛있었고

된장찌개가 맛있었고

그녀가 매일 골라 매주던 넥타이가 멋있었고

그녀와의 입맞춤을 잊지 못하겠는데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고

그때 뻐꾸기 소리가 자주 들렸다

가슴이 뻐꾸기 소리를 묻고 있었다

지하철 속에서도 시청 앞 광장에서도 뻐꾸기 소리를 들었다

내가 그녀 되어 가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도

그 새가 울었다

 

 

 

시집 아그라로 가는 길(시로여는세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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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꾸기시계

 

  김명원

 

 

  아이가 우는데, 봄이다. 가늘게 질기게 나약하게 초라하게 애절하게 슬피 자꾸 울고 있는데, 봄이다. 혈액암이 네 친구니? 병동 가로등불이 구구단으로 켜지는 저녁 일곱 시, 무균 항암실 간호사가 붙든 팔뚝에서 제법 커다란 벚꽃나무가 피고 피어나고 점점이 핏빛 꽃그늘을 한 잎씩 네 잎씩 뭉텅 떨구어 내는데, 아픈 유령이 잔기침으로 일어나서, 같이 울어줄까? 미안하지만 우는 방식이 기억이 안나, 눈물이 터진 내장만 꺼내볼래?

 

  죽음도 네 친구니? 가장 나중에 아이를 부르는데, 봄이다.

 

  벚꽃나무가 피었던 지문만 환하게 얼룩져 있는데,

 

  아이가 누웠던 자리가 텅 비어 있는데,

 

  아직도 봄이다.

 

 

 

―계간시와 경계(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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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 *  

 

김성규  

 

열쇠로 방문을 연다

  

구불거리는 밭고랑이 펼쳐진다 밭둑에 서서

웃고 있는 어머니,

바짓가랑이에 묻은 진흙 덩어리가 햇볕에 반짝인다

이제 저를 기다릴 필요 없어요 웃을 때마다

진흙 사이로 신발이 빠져들어간다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너는 나를 찾아오는 거야

밭고랑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숲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자지 않을 수 있어요?

대답도 없이 내 손을 잡고 어머니가 일어선다

밭고랑을 넘어가는 개미 허리에 햇살이 감기고

 

하늘로 새들이 날아오른다 언제나 네 앞에

나타날 수 있어 이곳은 집으로 가는 길,

저렇게 가는 허리로 어떻게 감자를 이고 갈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비슷해 개미가 어디에서나 살듯이,

 

좀 자고 싶어요, 흙탕물에 개미 한 마리가

머리를 쑤셔박고 졸고 있다

아무리 걸어도 끝나지 않는 길

죽은 나무에서 줄줄이 벌레가 기어 나오듯

눈물이 사내의 얼굴에 흘러내린다

 

방안을 걸어다니는 사내,

구물거리는 이불 위에서 며칠째 부패하는 음식물들

개미들이 기어와 새카맣게 접시를 덮는다

뱀을 보고 놀란 새처럼 우는 뻐꾸기시계

자루처럼 허리가 꺾인 어머니

아들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보르헤르트의 소설 제목

 

    

 

시집너는 잘못 날아왔다(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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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등뻐꾸기의 전언


복효근

 


5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그 놈은 어쩌자고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렇습니다
다투고는 며칠 말도 않고 지내다가
반쯤은 미안하기도 하고
반쯤은 의무감에서 남편의 위상이나 찾겠다고
쳐지기 시작하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보지도 않고
윗도리는 벗지도 않은 채 마악 아내에게 다가가려니
집 뒤 대숲에서 검은등뻐꾸기 웁니다
나무라듯 웁니다
하려거든 하는 것처럼 하라는 듯
온몸으로 맨몸으로 첫날밤 그러했듯이

처음처럼, 마지막일 것처럼 그렇게 하라는 듯
홀딱벗고 홀딱벗고
막 여물기 시작하는 초록빛깔로 울어댑니다

 

 


시집『마늘촛불』(애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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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소리

 

도종환 
 

 
비 그친 아침나절 뻐꾸기 웁니다
고맙습니다 변두리지만 그래도 소도시인데
뻐꾸기 소리 들을 수 있어서
이 근처 어디 그래도 둥지 틀고 그리운 목청을
나뭇가지 사이로 날려 보낼 숲이 있어서
잔가지 물어다 거처를 마련하고
소리쳐 누군가를 불러보는 거겠지요
소리의 깃털로 길게 쓸고 가는 허공은 청아합니다


병들어 이틀을 고요히 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안 해 본 일 하느라
몸의 근육들이 곤두서고 남을 자주 미워하곤 하는데
가끔 이렇게 멈춰 세워주시고
비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끓던 것들이 가라앉고 그 자리에 빈 하늘이나
뻐꾸기 소리가 내려와 앉는 동안
내 속에서 나를 따르던 것들이 정좌하고 앉습니다
내 그림자도 그 옆에서 고요합니다


흐린 날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글거리는 욕망의 지평선을 식힐 수 있는 때도
재구름 가득한 이런 날입니다
실패는 다시 절제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지난 몇 주 동안
노각나무는 흰 꽃을 잃고 나는 평정을 잃었습니다
나는 맑은 날만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뻐꾸기소리만 들어도 걸음을 멈추고
씀바귀 꽃에도 노랗게 물드는 사람입니다


뻐꾸기 소리가 어린 사과의 엉덩이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직 소년인 저들에게
최초의 시련을 알게 해 주시고
조금 더 믿고 시간을 허락해 주시어
늘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도 해마다
스스로 제 빛깔과 이름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저들과 우리의 운명에 아름답게 개입해 주시어


 


ㅡ월간『유심』(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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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소리

            

장석남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봉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시집『젖은 눈』(문학동네, 2009)



뻐꾸기는 울어야 한다

 

이문재

 

 

초록에 겨워
거품 물까 봐
지쳐 잠들까 봐
때까치며 지빠귀 혹여 알 품지 않을까 봐
뻐꾸기 운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울음으로 뉘우치는 일
멀리서 울음소리로 알을 품는 일
뻐꾸기 운다


젊은 어머니 기다리다
제가 싼 노란 똥 먹는 어린 세 살
마당은 늘 비어 있고
여름이란 여름은 온통 초록을 향해
눈멀어 있던 날들
광목천에 묶여 있는 연한 세 살
뻐꾸기 울음에 쪼여 귓바퀴가
발갛게 문드러지던 대낮들


그곳 때까치 집, 지빠귀 집
뻐꾸기가 떨어뜨려 놓고 간 아들 하나
알에서 나와 운다
뻐꾸기 운다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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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로 우는 봉분


유재영

 

 

해마다 모시면서 그 해 봄도 함께 묻어


해마다 이맘때면 뻐꾸기고 우는 봉분


옆 자리 우리 어머니 함께 듣고 계실까

 

저승도 보인다는 오동꽃 환한 날엔


눈에 익은 행서체로 나직히 휘어지는


그 말씀 무릎을 꿇고 잔처럼 받습니다

 

 


―시조집『느티나무 비명(碑銘)』(동학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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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새


손세실리아


 

숲해설가와 함께 방태산 미산계곡에 들었다

낱낱의 사연과 생애가 사람살이와 다름바 없어

신기하기도 뭉클하기도 하다 하지만 발을 떼는 족족

소소한 것들까지 시시콜콜 설명하려드는 통에

골짜기 깊어질수록 감동이 반감되고 만다 게다가

비조불통 기막힌 풍광 앞에서는 소음과 진배없다

상호간 불편한 기색 감추기에 급급할 즈음

새 한 마리 물푸레나무 허공을 뒤흔들어댄다

검은등뻐꾸기라며 강의를 재개하려하자

누군가 볼멘소리로 막아선다

딴 거 몰러두 갸는 지가 좀 알어유 홀딱새여유

소싯적부텀 그렇게 불렀슈 찬찬히 함 들어봐유

홀딱벗꼬 홀딱벗꼬... 어떠유 내 말이 맞쥬?

다소 남세스럽지만 영락없다

육담이려니 흘려들었는데 아니다

기막힌 화두다

 

생의 겹겹 누더기 훌훌 벗어던지고

가뿐해지라는 

 



시집꿈결에 시를 베다(실천문학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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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우는 날은

 

박기섭

 

 

뻐꾸기 우는 날은

뻐꾸기 울음터에

여남은 개 스무 개씩 돌팔매를 날려본다

돌팔매 날아간 족족

앉는 족족

너 있다

 

아니면 또 한나절을

꽃밭 가에 나앉아서

봉숭아 채송화를 송이송이 헤어본다

다홍빛 분홍빛 속에

그 꽃 속에

너 있다

 

뻐꾸기 우는 날은

뻐꾸기 울음 따라

십 리쯤 시오 리쯤 자드락길 걸어본다

하현달 사위는 서녘

그 서녘에

너 있다

 

 

 

―시선집『한국시조대상 수상작품집』(2015년,  고요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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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새

 

이정홍

 

 

빨간딱지 붙은 문패 강제집행 내쫒긴다.

천길 가지 무허가 집 둥지에 저 식구들

바람도 가끔 흔들림에 눈을 질끈 감고 산다.

 

가을빛 메마른 지폐 나뒹구는 마을 어귀

신불자 빚 갈피갈피 돌려 막다 지친 가족

어린 것 손을 잡고서 들레는 떠날 인사다.

 

여린 목숨 날개짓이 그 아비는 몰라도

등꽃 그늘 또 헹굴 무렵 건실한 새 짝을 만나

배내털 옷 차려입고 어린 것은 다시 올 거다.

 

 

이정홍 시집『허천뱅이별의 밤 』(고요아침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