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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가슴을 바꾸다/임현정
한복 저고리를 늘리러 간 길
젖이 불어서 안 잠긴다는 말에
점원이 웃는다
요즘 사람들 젖이란 말 안 써요
뽀얀 젖비린내를 빠는
아기의 조그만 입술과
한 세상의 잠든
고요한 한낮과
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이
그 말랑말랑한 말 속에
담겨 있는데
촌스럽다며
줄자로 재어준 가슴이라는 말
브래지어 안에 꽁꽁 숨은 그 말
한바탕 빨리고 나서 쪽 쭈그러든 젖통을
주워 담은 적이 없는 그 말
그 말로 바꿔달란다
저고리를 늘리러 갔다
젖 대신 가슴을 바꿔 달다
재미있는 시다. 젖이 불어 저고리를 늘리러 갔는데, 한복점 점원이 요즘 젖이란 말을 안 쓴단다. 그 말을 ‘가슴’이란 단어로 대체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말랑말랑한 젖이 어떻다고 그 말을 기피하는가? 젖에서 성적인 것만을 떠올리는 자는 음란하다. 젖 빠는 아기의 작고 어여쁜 입술과 한 세상의 고요와 다정한 포옹을 다 버리고 오직 성적인 것만을 연상하는 자는 음란한 것이다. 젖을 가슴으로 대체하려는 사회는 위선을 떠는 사회다. 시인은 저고리를 늘리러 갔다가 음란사회가 점잖을 떨며 위선을 피우는 걸 눈치채 버린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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