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산/김규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8. 2. 2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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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

 

 

명산 아닌

그 산이

두어 점 구름 아래

조용히 누웠는 이름 없는 그 산이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햇살이 부서져

황금빛으로 물든

오솔길에는

빨갛게 익은 열구밥이

정물화같이

푸른 대기 가운데 고정되었다

 

바람과 짐승과 안개가

산 저편으로 잦아든 뒤

해 기울고

소달구지 하나 지나지 않는

신작로길이

영원처럼 멀었다

 

바다 우짖음 소리도

강물의 고요한 숨결도

알지 못하나

소박한 자태로 하여

쓸쓸한 기쁨 안겨주던 산

어린 나를 키워준 산이

탕아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시여

너의 고뇌와 눈물의 아름다움

그리워하지 않은 때 없으나

이룬 것 없이

죄만 쌓여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고향 하늘

   

, 철없이 나선

유랑길

몸은 병들어 초라하기 짝이 없으나

받아주리라 용서해주리라 너만은

이름 없는 나의 산.

 

 

 

시집느릅나무에게(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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