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반찬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 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시집『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언제부턴가 혼밥이라는 말이 일상에서 식상한 말처럼 유통이 되고 있다. 다음 어학사전에도 올라와 있는데 뭐 누가 부가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이제는 다 아는 말이 되었다. 말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이지만 이 혼밥이라는 말은 지금의 세태를 봐서는 상하지 않고 유통기간이 아주 길어질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집만 해도 몇 식구 안 되는데 아침이고 저녁이고 온 식구 모여서 밥을 같이 먹을 때가 별로 없다. 특별한 날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이면 서로 날짜와 시간을 맞추고, 또 맞추고 몇 번의 조율을 하고 나서야 겨우 한끼의 밥을 나눌 수 있다
어른도 아이들도 참 바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모두들 혼자서 밥을 먹는데 이건 배고파서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이지 음식을 음미하며 맛있게 즐기면서 먹는 밥이 아니다. 이렇게 구겨서 입으로 쑤셔 넣는 밥에서 무슨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온갖 고기반찬 산해진미라 한들 혼자서 먹는 진수성찬보다 찬밥에 물 말아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더라도 다정한 이들과의 식사가 소화도 잘되고 몸의 흡수도 잘돼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시는 아무리 영양가 많고 좋은 음식의 풍성한 식탁이라도 사람만한 음식 없다고 말을 하고 있다. 얼굴이 곧 맛있는 반찬인 것이다. 이웃과 친척을 "간식, 외식"으로 표현한 시어도 시와 잘 버무리어져 시의 맛을 더욱 맛깔스럽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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