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거리--진혼마당
넋이여, 망월동에 잠든 넋이여
1. 오월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
어머니의 피눈물로 이름 석자를 적고
아버지의 통곡으로 원혼을 불러
어느 누가 올리는 축원원정인가 하옵거든,
어느 뉘 집 부귀영화를 빌고
자손만대 생기복덕을* 기리는 안택굿이 아닙니다
한 집안 삼대에 걸친 평안을 빌고
십대가 곱게 나기를 발원하는 대감굿이 아닙니다
하나를 투자하여 백을 벌어들이고
백을 밑천삼아 천석꾼을 삼자 하는
재수굿 안택굿은 더욱 아닙니다
사람마다 뿌리 두는 어머니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울리는 어머니
그 단장의 아픔으로 불러보는 이름 석자
비명절규 사연 여기 있사외다
원통하고 절통하여
대낮의 해도 빛을 잃고
지나가던 바람도 가던 길을 멈추는
한 고을 떼죽음 사연
일가족 몰살 사연
줄줄이 비명횡사 사연
여기 있사외다
연으로는 천구백팔십이요
달로는 푸르른 오월 날로는 십팔일이라
일년 삼백육십오일 여덟 번 지나고도
그 상처 그 고통 잠들기는커녕
나날이 피끓는 사연 여기 있사외다
어둠속으로 어둠속으로 전해지는 사연
진실을 알려달라 외치는 사연
천지신명 호명으로 통곡하는 사연
생각만 떠올려도 붉은 피 솟구치고
듣기만 해도 사지가 벌벌 떨리고
아무리 잊으려 애를 써도
피바다 눈물바다 송장바다 앞을 가려
사는 것이 사는 것일 수 없고
먹는 것이 먹는 것일 수 없는
원통한 사연 억울한 사연
불쌍하고 가련한 사연 여기 있사외다
길을 가는 대낮에도
칼로 꽂히는 이름 석자
어스름녘 천지사방에서
창으로 날아드는 이름 석자
진압봉 밑에서 소리치는 이름 석자
대검에 찔러 피흘리는 이름 석자
연발 총탄 앞에
우후죽순처럼 솟구쳤다 쓰러져버린 이름 석자
헬리콥터 기관소총 사격에
먼지 티끌보다 가볍게 떼죽음
몰사당해 떠도는 이름 석자
장마철엔 장대비로 쏟아지고
엄동설한엔 북풍한설로 휘날리고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엔
진달래, 산수유, 민들레, 제비꽃
산꽃 들꽃으로 산천을 뒤덮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넘나드는 백팔번뇌 골짜기
크고 작은 바람으로 울부짖는 이름 석자
수백 수천의 비명횡사 원혼들이
핏발선 두 눈 부릅 떠 웁네다
애달프고 목메인 사연 보듬고
동서남죽 산지사방에서 소리쳐 웁네다
2. 세월이 우리 아픔 묻어주지 못합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어린것들의 울부짖음도
어머니 조국이 우리를 부릅니다
수백 수천의 행진도
총궐기합시다 총궐기합시다
우리의 아들딸이 다 죽어갑니다
새벽이면 들려오는 쟁쟁한 외침도
세월이 그 아픔 다 묻어주지 못합니다
시간이 그 아픔 다 감싸주지 못합니다
뜨겁게 달은 번철 위에
오장육부 다 뽑아 지글지글 볶아친다 해도
그날의 고통에 비기지는 못합니다
산해진미 차려놓고
석달 열흘 가무를 즐기는 세월이 온다 해도
그날의 슬픔을 잠재우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넋입니다
사람이 길이고
산이고
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땅이고
흙이고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기둥이고
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개벽이고
혁명이고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꽃이고
바람이고
천지신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시작이고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역사이고
해방이기 때문입니다
아아
사람이 영원무궁이고
극락이고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이 사람에게 무릎꿇는세상은
옮음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은 세상이 아닙니다
자유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은 세상이 아닙니다
독재 때문에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세상은
세상이 아닙니다
공복이 내리치는 채찍 아래
사람이 무릎꿇는 세상은 세상이 아닙니다
청송감호소나 삼청교육대
대공분실이나 지하 취조실에서
못 당할 고문으로 으악으악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은 세상이 아닙니다
풍년 농사에 한숨짓고
김 풍작에 눈물짓는세상은
세상이 아닙니다
지체 높은 양반네들 술잔이나 기울이면서
시원한 말 한마디 내뱁지 못하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4. 눈물없이 부를 수 없는 이름 석자
이런 세상을 등짝에 지고
사람 사는 세상 한번 만들자
불꽃 치솟았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광주사태라 부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광주학살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광주민중항쟁이라고 부릅니다
아니 사람들은 그것을
광주의 해방구라 부릅니다
피비림내 자욱한 그날의 함성 속에
눈물없이 부를 수 없는 이름 석자
우리 가슴에 비수로 꽂히는 이름 석자
우리의 식탁에 피바다로 넘치는 이름 석자
우리의 잠자리에 악몽으로 엉겨붙는 이름 석자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바람결에 달려오는 이름 석자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이름 석자
강물 위에 어른거렷다가
청명 밤하늘에 별로 가득했다가
사무치는 달빛으로 떠오르는이름 석자
그 사연 끌어안고 어머니 웁네다
그 사연 끌어안고 영상강 흐릅니다
그 사연 끌어안고 오월바람 붑니다
어디 이게 한 어미 사연이리까
어디 이게 한 고장의 피눈물이리까
열에 열 손가락 모아
백에 백 사람 마음에 물어본들
광주사태 사연 속에
우리 사연 있습니다
광주학살 눈물 속에
우리 눈물 있습니다
광주항쟁 고통 속에
우리 혁명 있습니다
광주민중 죽음 속에
우리 부활 있습니다
잠재울 수 없는 남도의 바람 속에
우리의 염원, 우리의 개벽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주오월항쟁 연유에 묻은
피 닦아주사이다
광주 오월항쟁 원혼 불러
넋 씻어주사이다
08.12.29/ 밤 1시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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