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얼룩말나비와 아버지 /최경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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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얼룩말나비와 아버지

 

최경심

 

 

봄볕 환한 길 위에 나비가 누워 엎드려 있다

꽃향기에 취해서도 비틀거리지 않고

잠을 자면서도 날개를 부리지 않았던 나비

곁으로 바짝 다가가도 꼼짝하지 않는다

느릿하게 흔들리는 긴 더듬이에 실린

가냘픈 숨결에서

힘겹게 건너는 시간의 끝자락이 보인다

 

등 위에 짊어진 인연 차마 버리지 못해

바로 눕지도 못하고 죽어간다

맥 놓은 날개 위에 망연히 앉아있는

흑백 물결무늬 선명한 얼룩말

내리뜬 순한 눈에 고여 있는 석별 적요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던 저 너머 시간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자식들 편하라고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무너져 내리던 아버지의 날들은

불효의 긴 그림자로 남겨져

나는 지금도 가슴이 캄캄하다

 

나비 같은 호흡으로 밤을 새우고

동틀 무렵 기척도 없이 야윈 어깨를 내리시던

아버지도

등에 업힌 자식들 내려놓지 못하고 가셨으리라

 

아버지의 운구차가 지나가던 길에

활짝 핀 벚꽃은 세월이 지나도 이울지 않는데

그 꽃잎 흩어져 밟히는 한길에서

죽어가는 나비가 눈에 밟히지만

그냥 돌아서고 만다

 

 

 

<2020년 동서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20211201611/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