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필사 시

고정희 유고시집遺稿詩集 .......1.2.3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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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유고시집遺稿詩集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제 1부

1
밥과 자본주의

평등하라 평등하라 평등하라
하느님이 펼쳐주신 이 땅 위에
하녀와 주인님이 살고 있네
하녀와 주인님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에서는
밥은 나눔이 아니네
밥은 평화가 아니네
밥은 자유가 아니네
밥은 정의가 아니네 아니네 아니네
평등하라 펼쳐주신 이 땅 위에,
하녀와 주인님이 사는 이 땅 위에서는

하나 되라 하나 되라 하나 되라
하느님이 피 흘리신 이 땅 위에
강도질 나라와 빼앗긴 나라의 백성이 살고 있네
강도질 나라와 빼앗긴 나라 백성이 사는 이 땅 위에서는
밥은 해방이 아니네
밥은 역사가 아니네
밥은 민족이 아니네
밥은 통일이 아니네 아니네 아니네
하나 되라 펼쳐주신 이 땅 위에,
강도질 나라와 빼앗긴 백성이 사는 이 땅 위에서는

아아 밥은 가난한 백성의 쇠사슬
밥은 민중을 후려치는 쇠사슬
밥은 죄없는 목숨을 묶는 오랏줄
밥은 영혼을 죽이는 총칼

그러나 그러나 여기 그 나라가 온다면
밥은 평등이리라
밥은 평화
밥은 해방이리라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온다면
밥은 함께 나누는 사랑

밥은 함께 누리는 기쁨
밥은 하나 되는 성찬
밥은 밥은 밥은
함께 떠받치는 하늘이리라
이제 그 날이 오리라, 여기
그 나라가 오리라, 기다림
목마르네 목마르네 목마르네


하녀와 주인님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평등은 있을 수가 없지요.
공산주의사회에는 계급이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과 노동자가 있으니
세상 그 어디에도 평등할 수는 없네요.
08.01.06/ 일요일 아침 10시 6분


2
밥과 자본주의
아시아의 아이에게

어느 태양의 나라에서
아시아의 배고픔을 우는 아이야
슬픈 이야기가 여기 있구나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시아엔
네 탯줄을 결정짓고
네 길을 결정짓는 힘이 따로 있었구나
네가 네 발로 걷기도 전에 아시아엔
네가 두 손으로 절하며 받아야 할
밥과 미끼가 기다리고 있구나

고개를 똑바로 들려무나 아이야
아시아의 운동장을 뛰어가려무나
네가 두 손으로 절하며 밥을 받을 때
그것은 아시아가 절하는 거란다
네가 무릎 끓며 미끼를 받을 때
그것은 아시아가 무릎 끊는 거란다
네가 숨죽여 고개 숙일 때
그것은 아시아의 하느님이 고개 숙이는 거란다

크게 소리치려므나 아이야
너는 우리의 살아있는 희망
크게 소리치려무나 아이야
너는 아시아의 평등의 씨앗
너는 이제 자본의 하느님을 버려야 한다
아아 너는 이제 평등의 밥으로
평등의 밥으로 울어야 한다
아시아를 깨우는 힘찬 징소리로 징소리로
징 ~ 징 ~ 징 ~ 울려 퍼져야 한다

08.01.06/일요일 아침 10시 11분
아시아의 하느님과 유럽의 하느님이 다를까. 아무리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데 살다보니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사고하는 것도 다르겠지.


3
밥과 자본주의
보로드웨이를 지나며

문짝마다 번쩍거리는 저 미제 알파벳은
아시아를 좀먹는 하나의 음모이다
거리마다 흘러가는 저 자본의 물결은
아시아를 목조르는 합법적 강간이다
지프니 양철지붕 밑에
알록달록 새겨좋은 저 암호문이나
모든 수퍼마켓과 대형백화점에 면밀하게 진열된 양기즘은
세계 인민의 기둥서방을 자처하는
매판자본의 매춘문화이다
저것은 아시아의 추억이 아니다
저것은 아시아의 우정이 아니다
저것은 아시아의 역사가 아니다

동아시아의 하늘에 높다랗게 매달리
코코넛이 단물을 만들 동안
그리고 우후죽순처럼 치솟은 바나나가
바람난 치맛자락을 펄럭일 동안
우기의 홍수보다 무섭게
한 나라의 넋을 점령해버린 칼.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메이드 인 제팬
메인드 인 차이나 그리고 이제는
메이드 인 코리아?

경보장치가 없는 아시아에서
시장마다 번쩍거리는 저 외제 상표는
아시아 사람들의 희망이 아니다
거리마다 흘러가는 저 팝송가락은
아시아 사람들의 신명이 아니다
칼자루를 쥔 제국의 음모가
종말처럼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뿐

08.01.06/저녁 6시 51분

고정희 장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잔디] 와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책 겉페이지를 넘기면 단발머리의 고정희 시인의 상반신 사진이
있습니다.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테라스에서 찍은 것 같은데
사진과 실물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가슴속에 이글이글 타는 분노와 아픔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까요
시처럼 투사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정희의 연시를 보면서 가슴이 참 많이 아팠는데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이 시집을 보면은
자본주의와 밥을 가지고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시인들이 대다수 그렇듯이 진보적인 시인들이지요.
고정희 시인도 해남 출신이어서 그런가
진보적이고 억업적인 것에 대한 분노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