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필사 시

고정희 유고시집...7.8.9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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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밥과 자본주의
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사슬이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사슬이 돤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아옵니다 (상향∼)

08.0108/ 오후 17시 3분



8
밥과 자본주의
밥은 모든 밥상에 놓인 게 아니란다


아침이 찬란하게 빨래줄에 걸려 있구나
한국산 범패 소리가 너도밤나무 숲을
멱감기는 골짜기쯤에서 우리는
너도밤나무 잎사귀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둥그런 밥상 앞에 둘러 앉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느 흰쌀밥 옆에
김치, 들깻잎, 오이무침이 아직 푸르다
멀고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왕새우 요리가
붉을 빛을 내며 접시 위에 엎드려 있다
아이야 너는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쌀밥보다 먼저 왕새우 요리에 손이 가고
밥 대신 햄버거, 숭늉 대신 코카골라를 찾는구나
왕새우 요리가 밥상 위에 올려지기까지
주부들이 흘린 땀방울과
이 쌀밥 한 접시에 서려 있는
보다 많는 사람들의 곡절은 몰라도 되는구나
되도록 녹말은 조금만
담백질은 많이많이 섭취하는 아이야
네 웃음소리를 스스로 낮추련?

밥은 모든 밥상에 놓인 게 아니란다
네가 햄버거를 선택하고
왕새우 요리를 즐기기까지 이 흰
쌀밥은 애초부터 공평하지 않았구나
너는 이제 알아야 한다
밥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란다
네가 밥을 함께 나눌 친구를 갖지 못했다면
누군가는 지금 밥그릇이 비어 있단다
네가 함께 웃을 친구를 아직 갖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지금 울고 있는 거란다
이 밥그릇 속에 이 밥 한 그릇 속에
이 세상 모든 슬픔의 비밀이 들어 있단다
우리가 밥상 앞에 겸손히 고개 숙이는 것은
배부름보다 먼저 이 세상 절반의
밥그릇이 비어 있기 때문이란다
하늘은 어디서나 푸르구나 그러나
밥은 모든 밥상에 놓인 게 아니란다
네 웃음소리를 스스로 낯추련?

08.01.08/ 밤 11 41분



9
밥과 자본주의
다시 악령의 시대를 묵상함


고백하건대, 내 오랫동안 찾아 헤맨 그대가 있었습니다
총명하고 눈이 맑으며 사려 깊은 그대 찾아 헤맸습니다
내가 지쳤을 때 비파소리로 나를 깨우며
내가 곤궁했을 때 부드러운 품으로 나를 감싸고
내가 망가지고 망가졌을 때 서늘한 골짜기로 나를 인도하는 그대 찾아
낮과 밤 표표히 유랑했습니다
때로 산등성이를 날아가는 새의 하늘에서
나는 그대 모습을 보았습니다
때로 저녁 숲에 내려 앉는 달빛 속에서
나는 그대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아 그리고 때때로
새벽빛이 일어서는 아쓱한* 강안에서*
나는 그대 발자국 소릴 그리워했습니다
그런 그대 찾아 멀고먼 땅에 갈망의 닻을 내리고서
나는 오늘 느닷없이 악령을 만났습니다
찻집에서 너로구나...... 마주앉은 그 순긴,
총명하고 눈이 맑으며 사려 깊은 그대가 다가오는 그 순간,
그대 속에 은거하는 악령을 보았습니다

악령은 시궁창 모습으로 살지 않습니다
악령은 마귀 얼굴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악령은 누추하거나 냄새나는 손으로 악수하지 않습니다
악령은 무식하거나 가난하지 않으며
악령은 패배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악령은 성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를 범하지 않습니다
악령은 아름답습니다 악령은
고상하며 인자스럽고 악령은 언제나
매혹적이며 우아하고 악령은 언제나
오래 기다리며 유혹적이며 악령은 언제나
당당하고 너그러운 승리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일단 제압한 뒤
우리의 밥그릇에 들어앉습니다
악령은 도 하나의 신념입니다

악령의 이념은 정복자의 승리입니다
악령의 신호느 분열이며 분단이며
악령의 생존권은 전쟁이며 학살입니다
악령이 깃든 곳에 거짓 행복 거짓 평화 거짓 통일 있습니다
악령의 완성은 죽음에 이르는 강시 천국입니다
그러나 악령은 악에 의한 악을 위한 악의 승리에 모순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직 정복자의 승리에 축전을 보내고
그러므로 내가 아직 분열 분단 속에 살며
그러므로 내가 아직 학살의 역사 속에 있다면
내 시대는 바로 악령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그대 향한 내 꿈을 불살라야 합니 
그대를 악령과 바구지 않기 위해서

이제 내가 지쳤을 때 비파소리로 나를 깨우는 그대는 없습니다
내가 곤궁했을 때 부드러운 품으로 나를 감싸는 그대는 없습니다
내가 망가지고 망가졌을 때 나를 서늘한 정신의 골짜기로 인도하는 그대는 없습니다
이것이 악령의 시대의 대가입니다.

0801,09/ 밤 12시 02분


강안 江岸 - 강기슭/ 강가
아쓱하다 - 춥거나 무섭거나 할 때에 갑자기 몸이 움츠러드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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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어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
하느님에게서 무척 회의를 느꼈었나봅니다.

선진국에서 음식이 넘치고 넘쳐 그 쓰레기를 처지하지 못해
악취로 진동을 하는데
아프리카의 오지에는 굶어주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지요.

전쟁, 기아, 질병과 배고픔 등 고르지 못한 세상에 대해
분노를 한 시인 고정희은 못 본 적 하시는
하느님이 야속해서 항의를 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