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밥과 자본주의
아시아의 밥상문화
내가 거처하는 호스 슈 빌리지 아파트에는
종교학을 가르치는 인도인과
비파를 연주하는 중국인 그리고
시를 쓰는 한국인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데요
세 나라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시아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서로 고픈 배를 해결하는 방식에는
동상이몽을 확인하게 됩니다
대저 밥이란 무엇일까요
인도 사람은 인도식으로 밥을 듭니다
더러는 그것을 손가락밥이라 말합니다
중국 사람은 중국식으로 밥을 듭니다
더러는 그것을 젓가락밥이라 말합니다
일본 사람은 일본식으로 밥을 듭니다
더러는그것을 마시는 밥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사람은 미국식으로 밥을 듭니다
더러는 그것을 칼자루밥이라 말합니다
한국 살마은 한국식으로 밥을 듭니다
더러는 그것을 상다리밥이라 말합니다
손가락밥이든 젓가락밥이든
마시는밥이든 칼자루밥이든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랴 싶으면서도
이를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밥 먹는 모습이 바로 그 나라 자본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가라밥 위에 젓가락밥 있습니다
젓가락밥 위에 마시는 밥 있습니다
마시는 밥 위에 칼자루밥이 있습니다
밥이 함께 나누는 힘이 되지 못할 때
들어삼키는 힘으로 둔갑하고 맙니다
이것이 밥상의 비밀입니다
우리들이 겁내는 포도청이
젓가락힘이냐 마시는 힘이냐 칼자루힘이냐......
이 삼자 대질의 묘미를 즐기다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밥은 다만 나누는 힘이다, 상다리밥은 마주하는 밥이다, 지렛대를 지르고 나서
문득 우리나라 보리밥을 생각했습니다
겸상 합상 평상 위에 차린 보리밥
보리밥 고봉 속에 섞여 있는 단순한 땀방울과
보리밥 고봉 속에 스며 있는 간절한 희망사항과
보리밥 고봉 속에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민초들의 뜨겁디뜨거운 정,
여기에 아시아의 혼을 섞고 싶었습니다
08.01.07/ 밤 11시 23분
5
밥과 자본주이
하녀 유니폼을 입은 자매에게
가차없이 하느님이 팔려가고
성모 마리아가 팔려오는 어느 태양의 나라에는
팔려가는 하느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그대
팔려오는 마리아를 어머니라 부르는 그대가 있네
하녀 유니폼을 입은 그대가 있네
들꼬처럼 티없이 맑고 순한 그대
달의 그대가 있네
그대는 누구인가
하녀라 부르는 그대는 누구인가
태양이 된 사람들이 하늘을 차지하는 나라
자기 씨앗 뿌릴 땅 한평 없는 소작인의 나라에서
하느님이 팔려간 길을 따라
백치처럼 팔려가며 성호를 긋는 그대는 누구인가
성모 마리아가 팔려온 길을 따라
골고다로 향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달처럼 온순한 그대
순한 양의 그대가
바보보다 성실하게 친절하게
가난의 역사 억압의 역사
너무 슬퍼서 슬픈지조차 모르는 역사를 가냘픈 등짝에 지고
주님, 주님, 부르며 걸어갈 때
까닭 모를 눈물이 내 두 눈을 적시네
하녀의 친절과 단순한 노동의 아름다움이
빼앗긴 사람들의 서러움을 감싸네
지금 살아남은 자들의 골짜기
08.01.07/밤 11시 35분
6
밥과 자본주의
악령의 시대, 그리고 사랑
악령의 자본이 시대를 제패한 후
그대는 이제 꿈꾸는 것만으로는
안식의 밥을 갖지 못하네
기다림이라거나 신념 따위로는
그대는 이제 편히 잠들 수 없네
그대가 영혼의 방에 불을 끈 그대가
악령의 화려한 옷자락에 도취된 후
품위 있고 지적이며 인자하고 또 매우
귀족적인 악령의 도술에 반해버린 후
궁핍한 시대의 인본주의는 죽어버렸네
인본주의와 함께 신도 죽었네
사랑도 그대도 죽었네
연미복을 입은 악령의 날개 밑에서
그대는 지금 황홀한 사랑의 독주를 마시네
애오라지 그대가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노심초사 그대가 사랑하는 모습으로
악령이 망토 자락을 휘날리는 밤,
그대가 악령과 살을 섞고 입맞추는 밤에는
창세기의 하늘에서 비가 내리네
먼저 간 영혼들의 수의자락이
하늘에서 회색으로 젖고 있네
지난날 우리들 고행의 등불마저
상수리나무 숲에서 마악 젖고 있네
젖고 있는 목숨의 행복한 죄악 위로
실로 달콤한 악령의 순풍이 불어와
우리들 슬픔의 촉각을 마취시키는 동안
악령태평천국 박제수술대에 누운 어린 영혼이
새 시대 주기도문을 받아 외우네
세계는 이제 악령의 통일로 가고 있네
지적이며 우아하며 또 귀족적인 환상으로 사랑으로
08.01.07/ 밤 0시 7분
------------------------------------------------------------------
고정희 시인은 공평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무척 많았었나봅니다.
'2008 필사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경림 시선집 1...46.47.48.49.50.51 (0) | 2021.01.20 |
---|---|
고정희 유고시집...7.8.9 (0) | 2021.01.20 |
고정희 유고시집遺稿詩集 .......1.2.3편 (0) | 2021.01.20 |
신경림 시선집 1....34.35.36편 (0) | 2021.01.20 |
신경림 시선집 1....40.41.42.42.44.45 (0) | 2021.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