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림 시선집 1....첫 번째 시집 끝나고
두 번째 시집 [새재]입니다.
[새재]는 1979년 출간되었고 시 쓰는 스타일이나
특별한 변화가 없습니다.
이 시집들을 읽어보면 유달리 두렵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부끄럽다는 말도 자주 나옵니다.
신경림 시인은 김지하 시인처럼 투사형이 아니었지요.
김지하 시인은 세태를 풍자하는 [오적] 같은 시를 발표하고
몸으로 저항을 하다가
갇히는 몸이 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었지요.
그런데 신경림 시인은 겁이 많았는지 실세로 운동권에 뛰어들지도
않았으면서 연루될 것이 두려워
시골로 숨어 들지요.
그 십년의 잃어버린 세월이? 시골생활이 파장, 농무 , 목계장터 같은 시를 얻는
계기가 되었구요.
목계장터 같은 시는 님도 보셨지요.
바쁜 생활에서
시를 보는 즐거움이 있는 것도 괜찮은 삶이지요.
61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프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08.01.10/오후 5시 1분
62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어허 달구
바람이 세면 담 뒤에 숨고
물결이 거칠면 길을 옮겼다
꽃이 피던 날은 억울해 울다
재 넘어 장터에서 종일 취했다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사람이 산다는 일 잡초 같더라
밟히고 잘리고 짓뭉개졌다
한철이 지나면 세상은 더 어두워
흙먼지 일어 온 하늘을 덮더라
허허 달구 어허 달구
차라리 한세월 장돌뱅이로 살았구나
저녁햇살 서러운 파장 뒷골목
못 벌리 미련이라 좌판을 거두고
이제 이 흙 속 죽음되어 누웠다
어허 달구 어허 달구
08.01.10/ 밤 11시 38분
63
달래강 옛나루에
달래강 옛나루에 목을 잡고
이렁저렁 한세월 녹두적이나 구웠지
여름도 유월 진종일 돌개바람 일고
돌개바람 얼어 모래기둥 올리고
어리석은 길손들만 찾아들더라
물비린내 역하면 가마니짝 내리고
목청 돋우어 옥루몽이나 읽을까
바람아 돌아라 석달 열흘만 돌아라
담뱃집 작은 머슴 공사판 몽달 귀신
바람 속에서는 그애 울음이 들리지만
목도꾼의* 어여차가 노래처럼 들리지만
새재 고갯마루 초막을 지키고
한 서른 해 열두 달쯤 묵이나 쳤지
쥐엄나무 잎 사이로 개똥불 뜨자
숨죽였던 원귀들 잠이 깨더라
맨발로 성큼성큼 흰 돌만 골라 밟고
골짜기 싸리밭을 밤새 헤맨대도
꽃도 흙도 술렁이다 다시 숨죽여
바람아 돌아라 석달 열흘만 돌아라
담뱃집 작은딸 머슴 찾는 상사귀신
찢어진 치맛귀에 검정피가 맺혔지만
분홍적삼 청치마에 된서리가 서렸지만
달래강 옛나루에 새재 마루에
돌개바람 돌아라 석달 열흘만 돌아라
못난 길손들 옷섶을 들치고
돌개바람 돌아라 새재 마루에
08.01.10/ 밤 0시 5분
목도꾼 - 목도하여 물건을 나르는 일꾼.
목도 - 돌덩이나 무거운 물건을 밧줄로 얽어서 목도채를 꿰어 두 사람, 네 사람이 한끝씩 뒷덜미에
대고 메어 나르는 일.
64
백서白晝
빛바랜 늙은 솔에 허연 햇살
흰 돌 자갈밭에 채알을* 쳤네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발 일곱의 황룡 꿈틀대는
마흔날 또 아프레 숨죽인 통곡
펄럭이는 쾌자자락 새파란 무당
분 먹인 얼굴에 서슬 세웠네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갈대밭에 머리 풀고 잠든 아이야
여울물에 머리 풀고 우는 아이야
역귀 붙은 남정네들 상엿집에 피하고
아낙네들 메밀밭서 제 설움에 겨운데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대낮에도 강 건너엔 아우성소리
칠월에 산그늘엔 살기 찬 칼날
몸소지 올려라 부정소지 올려라
발 일곱의 황룡 아래 부정소지 올려라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빛 바랜 애버들에 허연 바람
햇살 따라 온 고을에 엉기는 요기
08.01.10/ 밤 0시 17분
채알 차일 - 햇볕을 가리려고 치는 포장. 천포.
상엿집 - 상여에 딸리 제구들을 넣어 두는 초막. 흔히 마을 옆이나 산 밑에 둔다.
65
옥대문玉大門
하양병 던져라 열두 강 갈라지고
노랑병 던져라 불바다 재가 되네
열려라 돌대문 참칡 거적 위
내 아이들 무릎 안고 새벽잠이 든.
아이들 들쳐업고 열두 강을 건넜네
뇌성벽력 여우꾐에 혼이 빠져도
바위에 찢기고 가시에 긁히면서
빨강병 던졌네 불바다 다시 일어
파란병 던졌네 열두 강 도로 막혀.
동네 밖에 글줄 쳐 잡귀 막아놓고
닫혀라 옥대문 떨깔나무 밑
내 아이들 새소리에 눈뜨는 아침.
투전방 뒷전에서 빨강병을 얻었네
떠돌이 책전에서 파랑병을 얻었네
헐린 시골 정거장 대목밑 장날
눈먼 계집 장타령에 노란병을 얻었네.
강물을 가로 지르고 불바다 지나
돌대문 열고 가서 내 아이들 업었네
닫혀라 옥대문 눈뜬 내 아이들
머리 한 올 바람조차 넘볼 수 없게.
66
각설이
굿거리 장단에 어깨짓하며
동네방네 찾아가 소문을 팔다
헐어치운 대장간 벽 녹슨 모루에
얹어보면 험한 손 불빛이 검고
지처 누운 거적에 이슬이 찬데
하늘 보고 삼세번 다시 절했네
천왕님 해왕님께 울며 빌었네
모질고 거센바람 비켜 가라고
두렵고 어두운 노래 재워달라고
밥벌레는 울어대고 잊으라네 밤새워
왼손에 칼을 들고 밟아온 얼음
바른손에 불을 잡고 건너온 강물
절뚝이며 지나온 해로길 육로길
또 한 해 초라니 따라 흘러온 날더러
덜덜대는 달구지로 살아온 날더러
시비거는 장꾼들 발길에 차여
한세상 각설이로 굴러다니다
한세상 광대로 허허대다가
눈떠보니 서까래에 새벽별 희고
08.01.11 / 저녁 6시 18분
----------------------------------------------
70년대만 해도 민주화시대의 격동기였었지요.
이 시집이 79년도에 나왔는데
79년도에 박정희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을 맞는 큰 사건이 일어났고
80년대 들끓는 민주화의 물결로 시대는
온통 어수선했었지요.
한 시대를 풍미해 온 한 시인의 시선집을 본다는 것은
그 시대를 다 보는 거와 마찬가지지요.
그런 의미에서 신경림 시인의 시선집을 잘 샀다는 생각입니다.
'2008 필사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정희 유고시집...15.16.17 (0) | 2021.01.21 |
---|---|
신경림 시선집 1....67.68.69.70.71.72 (0) | 2021.01.20 |
신경림 시선집 1...58.59.60 (0) | 2021.01.20 |
고정희 유고시집...13.14.15 (0) | 2021.01.20 |
고정희 유고시집...10.11.12 (0) | 2021.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