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필사 시

고정희 유고시집 1부 밥과 자본주의 18.19.20.21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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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밥과 자본주의
우리 시대 산상수훈



내 뒤를 따르고 싶거든
남의 발을 씻어주라
씻겨주라, 예수 말씀하셨네
그러나 우리 사는 시대는 자기 자랑 시대,
남의 발 씻기는 이 따로 있으니
그대를 세상은 몸종이라 부르네

내 십자가를 지고 싶거든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하라, 예수 말씀하셨네
그러나 우리 사는 시대는 남북분단 시대,
원수 사랑하는 이 여기 있으니
그대를 세상은 빨갱이라 부르네

내 기적을 알고 싶거든
오른빰을 치념 왼빰도 내밀고
오 리를 가라 하면 십 리까지 따라가라
따라가라, 예수 말씀하셨네
그러나 우리 사는 시대는 먹이사슬의 시대,
몸을 달라 하면 쓸개까지 주는 이 딸로 있으니
그대를 세상은 창녀라 부르네

내 평화를 누리고 싶거든
땅에서 가난하라, 땅위에
재물을 쌓지 마라, 주님 말씀하셨네
그러나 우리 사는 시대는 자본독점 시대,
오직 가난한 이 여기 있으니
그대를 세상은 거지라 부르네

아아 주님 당신은 위대한 허풍쟁이
대책 없는 허풍쟁이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구하면 주실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말씀하셨건만
구하고 두드리는 이 반동이라 부르네
아니오 하는 이 반체제라 부르네

08.01.12/ 낮 1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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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밥과 주본주의
신 없이 사는 시대의 일곱 가지 복

아직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아
그래도 너희는 복이 있다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죄없이 감옥에 있는 사람아
그래도 너희는 복이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직도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아
그래도 너희는 복이 있다
오고 있는 역사가 너희 것이다

아직도 평화를 위하여 싸우고 눈물짓는 사람아
그래도 너희는 복이 있다
해방의 땅이 너희 것이다

아직도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사람아
그래도 너희는 복이 있다
정의의 숲이라 이름받게 될 것이다

아직도 생존권 투쟁에 몸바치는 사람아
그래도 너희느 복이 있다
사람다운 세상에서 웃게 될 것이다

아직도 분단의 장벽으로 고통받는 사람아
그래도 너희는 복이 있다
통일의 하늘에 우뚝 솟을 것이다

08.01.12/낮 1시 37분

20
밥과 자본주의
코레히도 아일랜드의 증언


마닐라 베이로 들어오는 유일한 출구였던 만, 그래서 잔혹한 침략군과 유격대가 들어오는 문이었던 코레히도 아일랜드에는 한 나라의 서럽고 억울한 근세사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죄없는 필리핀 백성의 가슴을 겨냥한 아흔한 대의 미제 포탄기지가 오늘도 저 말없는 푸른 하늘을 향해 옛모습 그래도 장전되어 있는가 하면 맥아더가 무릎을 꿇고 도망갔던 비행장, 유경대의 본부였던 지하터널 요새, 전투병을 수용했던 거대한 바라크가 여기저기 숲속에 폐허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만 오천여명의 전몰장병 위령탑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살아있는 자들의 손끝으로 새긴 비문을 음미했습니다

고히 잠들라, 아들아
자유를 위한 너의 투쟁의 임무는 끝났도다.....

그때 묘지에 잠든 미군병사 하나가 벌덕 일어나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행자,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비문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남의 땅과 자유를 빼앗으러 왔다가 전사한 우리가 어떻게 자유를 위한 투쟁의 임무를 완성했단 말입니까 이 섬의 파도소리는 파도소리가 아니라 가장 슬픔 역사의 증언입니다 이 섬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오고 있는 역사의 경계경보입니다. 그대들 자 내 영혼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살아있는 자들이여 그대르 가슴에 전몰장병의 증언을 새겨 피냄새로 오열하는 전쟁의 역사를 증단해 주십시오 죽은 자는 증언일 뿐 오고 있는 시대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코레히도 아일랜들의 대리석 묘지에 새로운 비문을 적어두었습니다

현히 잘들어라, 아들아
침력을 향한 너의 살육의 임무는 좌절되었도다
네 희생을 통해서 제국주의는 침략의 죄악을 낱낱이 드러냈도다
이제 이 수치스런 족적을 만천하에 알려
세계공명의 엄존을 증언하노니
어떠한 이유로도 전쟁은 전쟁의 역사는 화형대에 오르리라


08.01.25 밤 12시 48분

20
밥과 자본주의

죽은자들의 대리석 빌리지 풍경


(검게 광나는 리무진을 타고 지금 막 죽은 자의 시신이 운구되고 있는 마닐라 중국인 묘지 입구, 그 뒤로 벤츠와 캐딜락을 탄 조객들이 천천히 뒤 따른다. 그러나 이곳에 봉분은 없다. 다만 거대한 대리석 빌리지가 있을 뿐, 간간이 남자들이 얼씬거리다. 어리이와 임신한 여자가 살지 않는다는 이 기묘한 마을에 한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댄다.)

아시아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저는 지금 어느 기상천외한 주택단지를 취재하기 위해 필리핀 마린라에 와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호화주택단지,
육만여 평의 부지에
재산의 크기대로 치솟은 저 개인주택들은
어린이와 임신한 여자가 살지 않는 집
바로 중국인 묘지촌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저와 함께 저 주택 속으로 들어가 보시겠습니다
(카메라 서서히 따라 들어간다.)

이 집은 건평 백오십 평이 넘는 대형주택입니다
오른쪽 방이 망령들을 위한 응접실
왼쪽 방이 망령의 위패가 안치된 안방
중앙이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객실입니다
그리고 이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복도 좌우로 망령들의 상식을 지어 올리는 식당이 둘
맨 뒤쪽에 이 집을 관리하는 집사와 가정부의 방이 있습니다
모든 방에는 성능 좋은 에어컨이 있고
수세식 화장실과 목욕탕이 있으며
산목숨 대여섯이
죽은 자의 경비를 철저히 서고 있습니다
황천까지 안정이 보장된 곳
(카메라 이동하며......)
마을 한가운데 솟아 있는 저 궁전이
망자들이 저승에 다녀올 때 차표를 파는 공덕관입니다
이곳에는 망자와 산자의 은밀한 협상이 거래된다 합니다
망자들이 산자의 곳간을 책임지고
그 대가로 호화생활을 보장받는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 묘지주택단지의 한 성묘객과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중국본토대륙에도 이런 묘지주택단지가 있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가진 것도 다 몰수당한 지 오래입니다
그럼 망자들을 위한 이 호화 빌리지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곳은 자본주의 땅이에요
밥줄을 쥔 자가 만능시대 아닙니까!
밥줄을 틀어쥐는 데 망자와 산자가 무슨 차이가 있어요
오히려 망자가 사뭇 유리하지요
죽어도 죽지 않으니까요
망자들의 축재만이 영원하단 말씀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벌써 필리핀 민중들의 묘지축출 시위가 있었어요
이슬 가릴 땅 한평 없는 산목숨들이
이제야 망자들의 고대광실 빌리지와 당 넓이에 눈총을 돌리기 시작한 것니다
그래서 최근의 재벌 망자들은
눈에 잘 띄지 않은 보호구역에
단독 호화묘지주택을 마련하는 추세입니다.....

자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우리 이웃나라에 엄존하고 있습니다
이 뉴스를 시청하시면서
나도 저런 곳에 묻히고 싶다 꿈구시는 재벌 망자님들,
황천신세 돼서까지 이고지고 누워서
자손들과 돈 협상 벌이시는 독점자본 망자님들,
불도저로 평치는 땅혁명 오기 전에
제발 마음 좀 비우십사!
사람이 죽으면 너나없이 한줌 재로 돌아가게 된다는
최근 세계 땅시장 여론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면서
현장취재 여기서 마칩니다
(옹 ∼ 헤 ∼ 야 ...... 민요)


08.01.15/낮 4시 16분

21
밥과 자본주의
호세 리잘이 다시 쓰는 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내
사랑하는 필리핀
피묻은 동아시아의 진주여
처절하게 짓밟힌 동방의 옥터여

서른다섯 내 짧고 팽팽한 생애
식민의 단두대에 주저없이 바쳤을 때
그대 위대한 혁명을 이뤘듯
그대 억압의 말발굽 벼랑끝으로 몰아냈듯이
조국이여, 독수리 날 듯한 그 기상 다시 펼쳐
아시아의 하늘을 날아올라라
즈믄 섬에 펼쳐진 네 치맛자락
오 형제여 자매여
우리들의 싸움은 새로 시작되어야 한다
천진스럽고 평화스러웠던 이 땅의 꿈,
티없이 맑고 부드러우며
다함없이 친절하고 따뜻한 님의
융융한* 영혼은 결코 죽지 않았다
어머니의 땅
동방의 빛으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먹이사슬이 아닌
그대 팔뚝에 넘치는 자유의 힘으로
칠천 섬 해일을 향해 그물을 던지던 그 원시의 힘으로
부활의 역사를 들어올려야 한다
그때 그대는 노예의 밥상을 거부하고
식민의 풍요로움을 거부하게 되리라
그때 그대는 하인이 열고 닫는 죽음의 저택을 허물고
평등의 집을 신축하리라
우리는 빛이다, 노래하리라

세계의 가람에 휘날리게 하라
수백년 동안 짊어진 학살의 역사
대대손손 물려받은 자본의 시녀 생활
이제는 끝이다, 뿌리 뽑아라
우리는 살아있다, 징소리 울려라

서럽구나 잃어버린 낙원이여
젖과 꿀이 흐르던 아시아의 가나안이여
일년 사시장철 찬란한 태양이 그대 머리를 감싸고
단물 흐르는 만 가지 과일이 그대 가슴을 덮어주지만

누가, 누가 이 촉복의 땅을 저주로 바꿔쳤는가!
제국의 날카로운 채찍이 그대의 등을 후려치고
겨레는 가난으로 등이 휘었졌구나
자매는 흰둥이의 퍼킹머신이 되고
어린이는 쓰레기더미 위에 버려졌구나
함께 가자, 아시아인이여
우리는 이제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침략의 술잔으로 축배를 들던
백인의 시대는 끝났다
아시안이 아시아의 적이던 시대도 끝나야 한다
침략의 경제는 아시안의 적이다
침략의 문화는 아시안의 적이다
침략으 정치는 아시안의 적이다
독점자본의 칼을 버려라 아시아여
침략의 유산을 버려라 아시안이여
그리고 함께 우리 함께
꿈에도 그리는 평화의 시대를 우리 힘으로 열어젖히자
동방의 힘으로 동방의 빛으로
세계 해방의 등불을 밟히라
인류의 영혼이 아시아인의 품에 고이 잠들어 있으니

08.01.15/ 오후 01시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