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1
황금송아지
배두순
코뚜레도 모르고
입가에 젖도 마르지 않은 새끼가 죽었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온 동네의 경사였던 시절
그 금쪽 같은 송아지가 죽었다
두런두런하던 어른들은 가마솥에 불을 지폈다
장작불이 달아오르고 담장을 넘어오는 젖내를
감나무에 묶인 어미가 모를 리 없었다
나무를 들이받으면 토해내는 거대한 울음에
하늘이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어른들은 부적의 붉은 댕기를 두 뿔에 걸어주고
막걸리 통을 대령하며 비손을 했다
그러한 사이,
새끼의 뱃속에서 나왔는지
보얀 젖 같은 국물이 가마솥에 가득했다
어른들은 국자를 집어넣어 국물을 퍼내고 도마를 눕협다
그들이 차려주던 국물과 고기를 맛나게 먹으며
배부른 식사를 하던 그날
붉은 도마 하나가 서쪽하늘 끝까지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길고 긴 핏빛 도마였다
커다란 짐승의 눈망울에 그렁그렁 넘쳐나는
피눈물을 본 것도 그때였다
<제10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
2021년 1월 26일 오전 10시 10분
2
세한도
배두순
겨울이 길다
비닐휘장을 두른 근린공원 누각사랑방
외로운 한 사발만으로 너끈히
끼니를 때울 줄 아는 노구老軀들의 아지트다
미지근한 체온을 기대며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저마다의 자서전을
읊어주고 들어주며 시간을 죽이는 소일거리
핏줄에 대한 애착만은 모두 비슷하여
안타까운 대목에서는 서로의 곡비가 되어주고
분노의 주먹총을 대신 쏘아주기도 한다
바람이 눈송이들을 몰고오자
노인 하나가 하늘을 쳐다보며 적설량을 잰다
아직은 돌아가지 않을 심산이다
그들은 알고 있다
폭설과 태풍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를
노인 둘 맞은편 포장마차에서
서너 개 어묵꼬지에 국물이라도 좀 챙겼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들어선다
따근한 인정을 나누는 사이
휘장 틈새로 들어온 햇살이
노구들의 어깨를 나긋나긋 주물려준다
눈치 빠른 바람이 얼른 눈송이들을 거두어가고
하늘이 웅숭깊은 눈동자로
찰칵찰칵 스캔하는 오늘이 무사하다
<제10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
2021년 1월 26일 오전 10시 22분
3
술래잡기
배두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양이 걸음으로 술래를 찾아 나섰다
무궁화 꽃을 천 번이나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
무궁화는 끝내 아이들을 돌려주지 않았고
혼자만의 술래잡기는 어스름에 발목을 잡혀야했다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게 분명해
아이들이 사라지자 금방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는 것은 평생 술래가 되는 일이었다
생의 어느 구부러진 대목에서는
베르테르의 슬픔에 젖어들었고
카사블랑카 멜로의 날들이 바람과 함께 살아져도
에덴의 동쪽에서는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다시 술래가 되어 삶을 뒤지고
인터넷의 내부까지 뒤집어보지만
의문의 꼬리 하나 잡지 못한 막막한 시간들
어떠한 희소식도 무궁화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꽃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술래의 날들이 쌓여가는데
무궁화는 여전히 묵묵부답의 아성만 지키고 잇다
<제10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
2021년 1월 26일 오전 11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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