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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꿈
하여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저녁의 문고리에 묶어두고 온
예순두 살 금례씨의 걱정이
교실 문턱까지 따라온다
틈만 나면 아픈 나이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희망야학 교실에는
저녁 7시가 켜진다
쪼글쪼글한 입술 괄약근이 열렸다 닫혔다
ㅏㅑㅓㅕㅗㅛㅜㅠ
비누 물방울처럼 소리가 둥둥둥 떠오르고
누리반 교실은 힘껏 달구어진다
뜨거운 물에 넣으면 원래대로 부풀어 오르는, 탁구공처럼
학생들의 찌그러진 마음이 부풀오 오른다
뭉턱뭉턱 빠져나간 젊음과
늘어나 버린 시력과
휘어지고 주름살 진 꿈을 구부리고 앉아
종이에 한 땀 한 땀 그려박는 글씨들
바다를 쓰면 바다 냄새가 나고
꽃을 쓰면 향기가 나고
새를 쓰면 새울음 소리가 나고
네모 칸 밖으로 자꾸 삐져나온 바다,
받침을 빠뜨린 태양을 지우고 다시 쓴다.
지우개는 바다와 태양을 지울 수 있지만
찌그러진 마음 한 칸에 새겨진 꿈은 지울 수 없다.
뾰족하게 깎아도 뾰족해지지 않는 기억
받아쓰기 한 단어들이 공책을 덮는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다
책상과 책상 사이에 숨어 있던
살찐 꿩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오른다
<2019 야학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2021년 1월 26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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