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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잇돌
김정숙
가물가물 사라진 방망이 소리
황학동 풍물시장에 나와 앉아
깊이 잠겨있는 유년의 시절을
아프게 들어올리네
햇살 팽팽히 내려쬐는 날이면
이불홋청 양잿물에
묵은 설움 푹푹 삶아내어
춤추는 바지랑대 위에서
젖은 가슴 말리시던 어머니
옥양목 뻣뻣한 기억이
풀 먹이던 손 베이고 가네
외지에 나가계셨던 아버지
그곳에 새 살림 차리고
한 계절 만 집에 들어 와
가정을 돌아보고 떠날 때면
배웅 대신 방망이 두드리며
다듬잇돌 넘나들던
어머니의 붉은 목울대
눈치 뻔히 알고부터
혼자서도 두드려 보던 여린 손이
어머니 마음 바닥에 촘촘히
서려있는 눈물방울 어루 만졌네
다듬이 장단 밤 늦도록
추임새 흠뻑 매기고 나면
저 혼자 아물어가던 상처
어머니도 없는데 소리만 살아
아직도 생을 다듬질하는 방망이
내 귀를 훑고 가네
<2020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2021년 1월 26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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