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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송진권
팔자를 고쳐 달아난 여자를 좆아
천리길을 걸어왔다
실뭉치 풀어 굴리며
요강뚜껑 굴리며
감발하고 괴나리봇짐 메고
봉두난발 폐포파립 흉중에 칼을 품고
핏발 선 눈으로
제비꽃에 눈 흘키고
꽃다지를 짓뭉개고
물어물어 찾아온 여자가 산다는 집
곱게 비질된 마당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이 두 켤레
빨랫줄 가득 펄럭이며 날리는 기저귀
갓난것이 우는 소리
여자의 웃음소리에 섞인
굵은 남자의 목소리
밥숟가락 부딪는 소리
고샅 살구나무에 살구꽃만 피워놓고
뒤안 자두나무에 흰 자두꽃만 피워놓고
흉중에 칼은 물에 가라앉히고
실뭉치 헝클어뜨리고
요강뚜껑 던져버리고
나는 돌아왔다
ㅡ시집『자라는 돌』(창비, 2011)
2021년 1월 27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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