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봄 /송진권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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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팔자를 고쳐 달아난 여자를 좆아

천리길을 걸어왔다

실뭉치 풀어 굴리며

요강뚜껑 굴리며

감발하고 괴나리봇짐 메고

봉두난발 폐포파립 흉중에 칼을 품고

핏발 선 눈으로

제비꽃에 눈 흘키고

꽃다지를 짓뭉개고

물어물어 찾아온 여자가 산다는 집

곱게 비질된 마당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이 두 켤레

빨랫줄 가득 펄럭이며 날리는 기저귀

갓난것이 우는 소리

여자의 웃음소리에 섞인

굵은 남자의 목소리

밥숟가락 부딪는 소리

고샅 살구나무에 살구꽃만 피워놓고

뒤안 자두나무에 흰 자두꽃만 피워놓고

흉중에 칼은 물에 가라앉히고

실뭉치 헝클어뜨리고

요강뚜껑 던져버리고

나는 돌아왔다

 

 

 

ㅡ시집『자라는 돌』(창비, 2011)

 

2021년 1월 27일 15시 0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