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 몰래 얘뻤던 봄 /손순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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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래 얘뻤던 봄

 

  손순미

 

 

  문을 닫은 지 오래인 카레 앞 자목자목 목력이 지고 있다 목련이 죽음의 향기를 내지른다 아무도 몰래 예뻤다가 색종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목련,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여기 목력이 지고 있어요, 누가 확성기 좀 빌려줘요! 나는 트럭을 얻어 타고 마을을 돌며 목력의 임종을 알려야 하리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목련은 저 혼자 예뻤다가 어두운 카페 유리창에 제 몸을 비춰본다 화려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목력의 울음이 흑흑, 떨어져 내린다 화양연화의 시절이 간다 나무 절벽 아래 떨어져 내리는 것이 있다 치마가 거꾸로 뒤집힌 채 낙화하는 헝겊 인형의 추락사를 본다

 

  목련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푯말을 내걸었던 한 장의 봄날이 저만치 간다 아무도 없는 카페의 목련밭에 서서 허전한 목덜미를 자주 만져본다

 

 

ㅡ격월간『현대시학』(2020년 9-10월호)

 

2021년 1월 26일 20시 5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