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몰래 얘뻤던 봄
손순미
문을 닫은 지 오래인 카레 앞 자목자목 목력이 지고 있다 목련이 죽음의 향기를 내지른다 아무도 몰래 예뻤다가 색종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목련,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여기 목력이 지고 있어요, 누가 확성기 좀 빌려줘요! 나는 트럭을 얻어 타고 마을을 돌며 목력의 임종을 알려야 하리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목련은 저 혼자 예뻤다가 어두운 카페 유리창에 제 몸을 비춰본다 화려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목력의 울음이 흑흑, 떨어져 내린다 화양연화의 시절이 간다 나무 절벽 아래 떨어져 내리는 것이 있다 치마가 거꾸로 뒤집힌 채 낙화하는 헝겊 인형의 추락사를 본다
목련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푯말을 내걸었던 한 장의 봄날이 저만치 간다 아무도 없는 카페의 목련밭에 서서 허전한 목덜미를 자주 만져본다
ㅡ격월간『현대시학』(2020년 9-10월호)
2021년 1월 26일 20시 56분
'2021 다시 필사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황종권)(제1회 문경새재문학상 대상 당선작) (0) | 2021.01.27 |
---|---|
<시>봄 /송진권 (0) | 2021.01.27 |
<시>다듬잇돌 /김정숙(2020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0) | 2021.01.26 |
<시>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꿈 /하여진(2019 야학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0) | 2021.01.26 |
<시>배두순 -황금송아지 /세한도 / 술래잡기(제10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0) | 2021.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