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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황종권
이것은 곰의 갈비뼈 속으로 날아간 길이다
저 억새풀이 곰의 털이라는 것을 바람만이 안다
뻣뻣하지만 구불거리는 나무는 곰의 이빨
돌부리에 넘어진 무릎만이 비로소 신발 끈을 매고
첩첩 뿌리로부터 멀어지는 꽃들이 곰의 위장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발자국을 밀어올리는 것은 길이 아니라
곰의 숨소리, 으스스 별자리가 돋는 것도
제 등허리를 바위에 긁은 까닭이다
발목이 늘 벼랑인 사람들이 있다
떨어지지도 주저앉지도 못하는 힘으로
아비가 될 사람들은 발목에 불씨를 지폈으리라
아니 발바닥에 물집 잡히는 힘으로
신열 들키지 않게 제 짐을 산맥에 맡겼으리라
문경 새재, 산적도 피해가는 길
피처럼 붉은 달, 곰의 내장을 밝혀준다
울 수 없어 노래하고 노래할 수 없어
발목으로 저녁을 불러들였을 나의 아비들
젖은 눈썹을 지닌 사람은 저 고원이 고향이다
바람마저 곰의 뼈를 빌려 노래하는 문경새재
흙바닥에 나의 이마가 찍혔다
달밤은 춥고 나는 닳도록 걸어야 할 길이므로
목 길고 허리 가는 억새꽃밭의 저녁으로 눕는다
<제1회 문경새재문학상 당선작>
2021년 1월 27일 15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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