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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견
홍계숙
개 한 마리 키우실래요?
죽기 살기로 부딪쳐 본 적 있나요 진퇴양난이 붉은 잇몸을 드러냈을 때 느닷없이 달려드는 개를 보았죠 죽어야 사는 여자, 그 영화 포스터가 걸린 담벼락에서
여섯 살 때 친구에게 달려든 개가 내 심장을 삼켜 버렸어요 고통을 물어뜯은 타액이 뚝뚝 떨어지던 나는 심장 한 쪽이 없죠 개도 안 물어갈 심장 한 쪽이 남아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아, 가끔 비명이 빛보다 빠르죠 소리의 누런 이빨 사이로 시큰한 통증의 향내가 풍겨요 오른쪽 팔을 들어 올릴 때,
오르막길일까요, 내리막길일까요
외투의 중턱에 지퍼가 끼어 웃지도 울지도 못하네요
오십의 안감을 꽉 물고서
사육에도 내공이 필요해요 내공은 어깨 근육 속에 있죠 개가 짖을 대, 끼인 지퍼의 기분을 살짝 들어서 올려야 하듯
오십은 개가 물어뜯기 좋은 나이
놓치고 돌아온 무지개를 되돌아보는 나이
개에 물린 날들이 견갑골에 기록된
컹컹, 어깨 깊숙한 짐승의 울음을 꺼내야 해요
―계간『다층』(2020년 여름호)
2021년 1월 25일 17시 26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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