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탐매(探梅)
임미리
계단을 오르니 운선암 뒤편 각시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상, 가슴이 잘린 곳을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비운의 여인상, 깊이 물든 사연 바위에 깊이 새겨둔 채, 지금 어디쯤에서 붉은 꽃 피워내고 있는지 궁금해지네.
암자 모퉁이 보일 듯 말 듯 한 곳에 숨어있는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마애여래상의 사연 한 자락 모르는 척 버리려 하는데,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향기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네. 저 멀리서 홍매화 막 피어나네.
굳이 탐매에 나서지 않아도 되겠다는 설레는 마음을 숨기는 곳이 하필 해우소라 혼자 붉어진 내 마음을 알았을까. 홍매화도 덩달아 붉어지는 이 봄, 명지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의 향기도 황송한데 매화는 저만 모르는지 자꾸만 붉은 미소 터뜨리네.
나는 후다닥 각시바위에 오르네. 살며시 조금씩 피어나는 홍매를 보네. 바람은 등 뒤에서 불어 비운의 사연 한 자락 지워지지 않게 바위에 새기네. 곷잎들이 휘날리네. 나는 용기를 내어 여인의 가슴에 얹힌 왼손을 가만히 내려주네.
ㅡ월간『우리시』(2020년 4월호)
ㅡ열린시학 동인지『빛, 그 너머』(고요아침, 2020) 2020년 제7회 계간지 우수작품상
2021년 1월 28일 19시 36분
'2021 다시 필사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조>빈 /서숙희(제39회 중앙시조대상) (0) | 2021.01.29 |
---|---|
<시조>구멍 /김나경(제39회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조부문 당선작) (0) | 2021.01.29 |
<시>애련 동백/ 강정숙 (0) | 2021.01.28 |
<시>윤장대 /김성신(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0) | 2021.01.28 |
<시>빅풋 /석민재(2017 신춘문예 당선작 세계일보) (0) | 2021.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