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5편>
절망을 뜯어내다
김양희
우리를 탈출한 고릴라가 돌아다니다
어떻게 나갔어
대체 비결이 뭐야
철망을 하루에 한 칸씩 나도 몰래 뜯었지
절망을 뜯어냈다고?
철망을 뜯어냈다고!
오타를 고치려다 눈이 주운 어휘 한 잎
절망을 하루에 한 줌 몰래 뜯어내야지
2021년 2월 6일 오전 1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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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이 나팔꽃에게
김양희
지하철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이른다
기둥 꼭 잡고 있어
사람들에게 쓸려나가
휩쓸고 지나가는 것
큰바람만 아니지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사람 속에
나팔꽃 새순처럼
기둥에 매달린 아이
자동문 열릴 때마다
더 꼭 매달리는 아이
2021년 2월 6일 오전 10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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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든 밥알
김양희
나뭇잎 다 내려놓고 침묵에 휩싸이던
햬화로가 잠시 기계음에 묻힌다
가지를
툭, 툭 자르며
혼자 우는 전기톱
톱밥이 바람 타고 첫눈처럼 흩날린다
모든 밭엔 울음이 말아져 있는 걸까
공복의 가지를 친다
나무에 든 밥알들
2021년 2월 6일 오전 10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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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그릇 앞에서
김양희
뒤꼍 자지러지는 까치 울음소리
웬 까치 비명이 저렇게 요람하담
창 너머 살펴보다가 나도 자지러진다
이빨에 무참히 찍혀 버둥거리는 까치
필시 절규하는 건 아내나 남편일 것
새끼들 거둬먹이려다 개밥그릇 앞에서
2021년 2월 6일 오전 10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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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
김양희
여인을 움직이는 목 짧은 고무장화
바람도 따라잡기 버거울 만큼 재바르다
바퀴를 달아났을까
소리보다 먼저 온다
밥집 문을 닫는 무교동 아홉시가
바닥에 주저앉아 하루를 벗겨낸다
장화 안
투명 비닐봉지
까만양말 하얀 발
어떻게 살아냈는지 다 말하지 않아도
불어터진 발 무늬 찍히는 바닥은 안다
첫새벽
눈밭 질러간
어미 노루 발자국
<2019 제1회 정음시조문학상>
2021년 2월 6일 오전 1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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