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1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나비 정첩
안이숲
무릎에 나비 한 마리가 다소곳이 날개를 접고 있어요
놋쇠 장식으로 된 고운 나비로 태어나 제대로 한번 날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봄이
여름을 건너뛰려 하고 있네요
종손이라는 이름에 걸린 가문 한 채 간수하느라 공중을 떠돌아 잔잔한 이곳에 뿌리를 내린 당신
방문이 열릴 때마다 낮은 발자국 소리에 묻은 녹슨 고백 소리 사뿐히 들려옵니다
솜털이 시작되는 고향에서 나비무늬 박힌 치마저고리 입고 의령장에 구경 가던, 팔랑거리는 속눈썹 사이로 가볍게 날아오르던
어머니의 원행遠行엔 연지곤지 찍은 꽃들마저 고개를 숙였던가요
얘야! 시집와서 빗장을 지키는 게 평생의 일이었단다, 느리게 접힌 쪽으로 아픈 고개를 쟁여둔 어머니
다음 생애는 날개를 달고 태어나지 마세요
몇 겹으로 박제된 풍장의 어머니 쇳가루 떨어지는 서러운 날갯짓 소리 수없이 들었어요
빗장에 방청 윤활제 솔솔 뿌리면 마당 한 귀퉁이의 세월에 퍼렇게 멍든 잡초가 피어오르고
당신은 눈코입이 삭아 자꾸만 떨어져 내립니다
붉은 눈물이 소리가 되어 공중을 묶어놓고, 납작하게 접힌 마음을 일으켜 이제 편안하게 쉬세요
여닫이에 꼿꼿한 등을 붙들린 지 수십 년, 뒷목부터 낡아가는 수의는 그만 벗으셔도 돼요
염습을 마친 8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겹겹이 에운 문틈 사이로 녹슨 쇠 울음소리 선명하게 들려오는 밤
당신의 평생 그 어디쯤에서 터지는 발성법을 익혀 이리도 가늘고 긴 곡비를 준비했을까요
우리 한번은 서로를 열어야 하는데
어머니, 어느쪽이 제가 들어갈 입구일까요
ㅡ『제11회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1)
2021년 4월 28일 112시 42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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