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당신이 지나간 자리 /김지명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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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나간 자리

 

김지명

 

 

내 이름 아래 내 시가 없다네

앞 페이지를 넘기고 뒤 페이지를 넘겨도

짐승이 벼린 말의 문장이 잠적했다네

 

글자 하나 세상에 떨어져 싹 틔울 수 없어

바람 불면 넘겨지는 모래의 책을 손에 쥐고

 

당신이 지나간 거라네

발자국마다 책의 글자는 사라지고

사라지며 페이지는 늘어난다네

 

당신은 양피지에 쓴 이야기에 덧쓰는 이야기

지워져, 기억은 예측 불허신분으로 발견된다네

 

다시 온다는 기별을 몰라

소멸된 책 속으로

주머니 짐승 한 마리 걸어가고 있다네

 

내내 상중(喪中)인 당신

 

 

 

―시집『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파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