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신이 지나간 자리
김지명
내 이름 아래 내 시가 없다네
앞 페이지를 넘기고 뒤 페이지를 넘겨도
짐승이 벼린 말의 문장이 잠적했다네
글자 하나 세상에 떨어져 싹 틔울 수 없어
바람 불면 넘겨지는 모래의 책을 손에 쥐고
당신이 지나간 거라네
발자국마다 책의 글자는 사라지고
사라지며 페이지는 늘어난다네
당신은 양피지에 쓴 이야기에 덧쓰는 이야기
지워져, 기억은 예측 불허신분으로 발견된다네
다시 온다는 기별을 몰라
소멸된 책 속으로
주머니 짐승 한 마리 걸어가고 있다네
내내 상중(喪中)인 당신
―시집『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파란, 2021)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구대 암각화 /이강하 (0) | 2021.07.21 |
---|---|
구름 /윤은영 (0) | 2021.07.21 |
자주색 가방 /김지명 (0) | 2021.07.21 |
옥상에 다녀 올 때마다 /이은심 (0) | 2021.07.20 |
빨간다리* 건너기 /홍계숙 (0) | 2021.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