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수련의 귀 /송은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9. 2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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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귀

 

송은숙

 

물의 표면에 바짝 귀를 대고 수련은 물의 소리를 듣고 있다

 

연못이 얼음의 뼈를 허물 때 움푹 팬 상처 자리를 햇살이 핥아주는 소리

물의 무게를 견디며 물수세미가 자라는 소리

 

몸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귀인 수련이 듣는 것은

물 안쪽의 소리인지 물 밖의 소리인지

그러니까 수련의 귀는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 걸까

 

혹은 하늘과 연둣빛 풍경이 연못에 비칠 때

그 풍경은 물 안의 풍경인지 물 밖의 풍경인지

하늘 위로 물가의 수양벚나무 꽃들이 떨어져

꽃잎 주변의 물 주름과 물 주름이 입술의 주름처럼 서로 만날 때

 

물 주름은 물의 안과 밖을 접으며 빠르게 번져가는데

 

수련의 귀는 매끄럽고 반짝 거리네

소리가 귀걸이처럼 둥글게 매달려 있다는 듯

수련은 잎새 하나를 뒤집으며 뒷면을 보여 주네

거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물의 수런거림이 모여 있다는 듯

 

나는 수련의 귓바퀴 언저리에서 자꾸 뒤집히는

물의 안과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네

 

 

 

―시집 『만 개의 손을 흔든다』(파란시선,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