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2022년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자의 작품 -등받이의 발명 외 2 /배종영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5. 2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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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자의 작품>

 

 

등받이의 발명

 

배종영

 

 

의자는 누구든 앉히지만

스스로 앉아본 적은 없다

의자가 특히 이타利他적 사물인 것은

등받이의 발명 때문이다

사람의 앞이 체면의 영역이라면

등은 사물의 영역이지 싶다

 

기댄다는 것, 등받이는 혈족이나 친분의

한 표상이지도 싶다.

갈수록 등이 무거운 사람들

등받이에 등을 부려놓고

비스듬히 안락을 느끼는 것이다

언젠가 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취한 남자가 끝까지 넘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몸에 등받이 달린 의자 하나

들어 있지 싶었다.

 

취약한 곳에는 대체로

이타적인 것들이 함께 있다

혈혈단신한테도 온갖 사물이 붙어 있어

결코 혼자인 것은 아니지 싶다.

등받이는 등 돌리는 법이 없듯이

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등에서

절대적인 등을,

등받이를 배운 사람이다.

 

계산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지만

정작 사물은 계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물은

일상사 대부분의 표준이 된다.

 

 

 

―시선집『제12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2)

2022년 5월 27일 오후 6시 56분

 

 

<2022년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자의 작품 1>

 

나무들은 그 몸속에 사다리를 갖고 있다

 

배종영

 

 

그동안 마음 주었던 나무들이

눈앞에서 자라는 순간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무들은 겉으로는 그냥 쑥쑥 자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몸속 물관의 기둥에 비슴듬히 사다리를 받쳐두고

가지의 저 끝 연둣빛 햇순들을 차례로 올려보내는 것이다.

그 햇순을 흔드는 높은 바람도 사실은

나무 속 사다리를 얻어 타고 올라간 것이다.

심지어 꽃들도 씨앗들도 살금살금

사다리를 기어오른 것들이다.

특이한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오른다는 것이며

오르고 나면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는 것이다.

나무들이 사방에 가지를 걸쳐두는 것도

바쁜 나무의 속을 배려해 겉에다

그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봐라, 내 눈에 들키고 만 낙화하는 이파리들은

사다리가 없어 뛰어내리는 중이다.

열매들이 툭툭 떨어지는 것도

물방울의 본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무들은

저 푸릇한 꼭대기가 가장 깊은 수심인 것이다.

아찔한 곳이란 가끔 위아래를 바꾼다.

 

지는 것들은 눈에 보이고

피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틈인 것이다.

 

 

 

―시선집『제12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2)

2022년 5월 27일 오후 6시 46분

 

 

<2022년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자의 작품 2>

 

 

거울이 얼기 전에 붕어낚시를

 

배종영

 

 

거울이 얼기 전에 붕어낚시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붕어는 제 호흡에 걸려드는 물고기, 들이마시는 들숨에 꿰이는 물고기다.

 

버드나무는 거울이 얼면 잠자는 얼굴이 된다. 버드나무와 눈인사라도 나누고 싶다면 거울이 얼기 전에 붕어들에게 휘어진 한 호흡을 먹여야만 한다.

 

거울은 자신의 투명에 붕어를 키운다. 쩌렁쩌렁 겨울 오는 소리 들리면 거울은 느릿한 유속과 차가운 가시를 붕어에게 권한다.

 

거울 속에는 얼굴을 빠져나가는 붕어들의 꼬리가 있다. 꼬리는 얼굴을 빠져나가면서 꽁꽁 거울을 얼린다.

 

쩡쩡 거울이 얼면

숨구멍에 낚시바늘을 넣는다.

 

거울은 밟으면 깨지는 곳, 자칫 홀긴 곁눈질에 허우적거릴 수 있다.

 

시린 손과 양지 녘을 채비로 챙기고 버드나무 전용 거울이 얼기 전에 붕언낚시를 해야겠다.

 

―시선집『제12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2)

2022년 5월 27일 오후 7시 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