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키운 섬
―감천마을
최삼용
비탈길 뒤뚱이며 기어 오른 마을버스에서 내려
까마득한 돌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면
마주 오는 사람 비켜가기 위해 잠시 된숨 놓아도 되는
그래서 노곤이 땟물처럼 쩔어진 골목은
이웃집 형광등 불빛까지 남루가 고인 저녁을 달랜다
액땜인 양 보낸 하루로 얻어진
고단을 눕이려 정처에 들면
허기를 부은 양은냄비의 끓는 물속에서
울혈 닮은 라면 스프 물 붉게 우러나고
몸집 부푼 면발 따라 가난의 죄까지 부풀린다
하느님과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서 살기에
믿음 약해도 하느님을 빨리 만날 것 같은
도시가 키운 섬
거기에 가난과 실패를 혹은 죄 없는 꿈을 혀끝에 단 채
휘황한 도심 발치에 두고
가난을 품앗이한 우리가 산다
―시집『그날 만난 봄 바다』(그루, 2022)
홀로 산행을 하며 삼각산(북한산) 능선과 골짜기 곳곳을 탐방할 때였다. 갑자기 서울 도심의 경치를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도심 속의 산 인왕산이 가고 싶었다. 정상에 올랐다가 서대문 쪽으로 하산을 한 적이 있었다. 내려와서 보니 ‘개미마을’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한국 전쟁 이후 삶의 터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산비탈에 천막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 되었다고 한다. 천막들이 무허가 판자촌으로 되었다가 몇 번의 철거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은 주민들에게 땅을 불하하고 지금의 터전으로 변했다고 한다. 벽화마을로도 유명한데 나중에 영화도 보았지만 홍제동 개미마을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탄광촌 산골 산동네에서 자라 서울의 거대한 도시는 그야말로 좋은 집과 번듯한 거리만 있는 줄 알았다. 처음 서울에 와 지인들을 따라 만리동 꼭대기와 삼양동 달동네를 보고는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나 잠시 충격의 혼란이 왔었다. 그런데 어디 이런 마을이 서울뿐이겠는가. 도시가 키운 섬들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을 것이다. 작은 새가 독수리에 쫓기듯 변두리로 달동네 밀려난 인생들, 누가 하느님과 가까운 곳이라고 달동네에 살고 싶겠는가. 이곳이 사람 냄새 나는 곳이라 붙어 있고 싶어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난을 누구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되겠지만 노력해도 안 된다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돌아보고 제도로서 고쳐 나가야할 것이다.
좋은 시는 발견에서 온다고 한다. 이 시는 달동네를 도시가 키운 섬으로 발견을 한 것이다. 달동네라는 현상 너머를 본 것이다. 그러나 발견한다고 해서 다 좋은 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로서의 조건은 내용에 따른 어조와 이미지와의 유기적인 관계, 적절한 비유와 시의 내용에 적합한 언어의 표현이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에서 풍기는 도시가 키운 섬에서 피워 올리는 사람 사는 냄새가 달콤하지 않은가.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미 /김미선 (0) | 2022.06.10 |
---|---|
일인칭의 봄 /이명숙 (0) | 2022.06.10 |
산수유 그 여자 /홍해리 (0) | 2022.06.10 |
경전 1 /이태호 (0) | 2022.06.10 |
눈 온 날 저녁 /박창기 (0) | 2022.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