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바치는 노래
김왕노
바람 너머 중앙고원에서 곁에 없는 네 생각에 안겨 사는
동안 차가운 조약돌 같은 나는 가끔 죽은 별이
다시 빛나듯 즐겁기도 했으니 내 마음은 해갈이 했다가
다시 피는 꽃나무 같았으니 슬픈 추억이 나를 깨워 앉혀도
바다로 가는 길이 멀어도 백년 묵은
쓸쓸함이 거대한 지네나 독을 뿜는 두꺼비 같이 돌아와도
침묵의 시위를 하는 중앙고원의 새와 꽃과
짐승의 마른 똥 타는 냄새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불러주는 노래, 침묵에 바치는 노래
중앙고원에 야크가 울면 나는 그간 팽개쳐둔 먼 이름을
그리워해야 한다. 유목 같이 사랑을 기르려고 떠돌아야 한다.
내 그리움의 연쇄반응으로 다시 시작되는 너를 향한 그리움
다시 시작하는 사랑, 빗장을 활짝 열어젖혀 다시 부를 푸른 휘파람
그것은 우리가 그리는 가난한 삽화
서로 왜 멀어지기만 하느냐는 말이 별빛으로 쏟아지는 밤이면
캄캄한 가슴으로 밤을 지키는 개의 목청이 트여
먼 네가 오라고 컹컹 짖을 테고 우리가 떨어져 있으나
꿈의 도감에도 없는 쌍둥이 같은 꿈을 꾸고
서로를 찾아가다 죽어간 숱한 그리움에 대한 추모의 글 몇 줄 남겨도 좋으니
중앙고원의 바람 속에서 쓸쓸한 옷자락을 보며 바람 부는 날이면
누구나 중앙고원으로 와야 한다. 는 깃발 하나
중앙고원의 하늘빛에 물들도록 만장처럼 높이 올려
장막처럼 바람에 파닥여도 좋다.
중앙고원의 새벽은 나를 깨우고 나는 외계인처럼 중앙고원에서 깨어나는
모든 것이 따뜻한 내 사랑의 체온을 느끼기 바란다.
어디서나 사랑이 없다면 절망의 감옥, 눈물의 감옥, 사식한 번 없는
잊어진 감옥이니 완벽한 사랑은 없으나
철없는 사랑이 중앙고원 행 열차를 타고 엘도라도풍의 노래를 부르며
화사한 안개꽃 한 묶음 같은 가슴으로 달려오기를
사랑이 중앙고원을 점령했을 때 사랑이 휴일이면 새로운 사랑이
우리를 지배하므로 모두가 사랑에 대한 긍정적 모드로 변하고
모든 사람은 사랑의 체질이 된다.
사랑이 잠시 그치면 우리는 이 세상 모든 나무처럼
중앙고원에서 푸르러진다.
아. 누구나 그립다는 중앙고원에서
검독수리 나는 창공에다 불사를 하듯 날마다 심고 기르는
코코넛 열매 닮은 그리움이란 작물
밑바닥에서 그리움도 없이 사는 사람은 지금부터
중앙고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유토피아
우리가 잃어버린 청사를 찾아 머나 먼 중앙고원으로
그리움을 하늘에 자유롭게 풀어주며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지듯
아픈 세월을 달래며 아픈 이름이 자꾸 불러 세우지만
그 아픔의 등을 다독여서 와야 한다.
중앙고원에 모처럼 비 내리면 푸른 비와 놀며 불멸의 사랑을 꿈꾸며
부르는 비에 젖는 노래, 아아 침묵에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
ㅡ웹진『시인광장』(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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